<이영수 칼럼> 왕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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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칼럼> 왕의 죽음
  • 이영수 기자
  • 승인 2014.07.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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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이영수 국장
 #춘추전국시대 중국을 제패한 제나라 환공 이야기 한 토막. 관중과 포숙을 양대 산맥으로 제환공은 평화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관중이 깊은 병에 들었다.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한 제환공은 관중을 찾아가 치세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관중은 제환공 곁에서 입속의 혀처럼 보필하던 역아와 수조, 개방을 내치라고 했다. “역아는 아들을 죽여 환공께 음식을 만들어 바친 자로 잔인하며, 수조는 환공을 옆에 두고 호가호위하기 위해 스스로를 거세한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충언했다. 이어 관중은 “개방은 위나라 공자로 제환공 밑에서 벼슬을 살면서 부모를 단 한 차례도 찾아가지 않은 불효한 자”라며 “이들을 멀리하고 포숙의 진언을 들으면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관중이 죽자 제환공은 포숙의 말을 들으며 나라를 다스렸지만, 결국 달콤한 말을 해대는 역아 등 3명의 간신을 곁에 뒀다. 그러자 포숙은 병을 핑계로 관직을 버렸다. 이후 제환공이 병이 들자 역아 등은 제환공의 뒤를 이을 세자로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무휴공자를 군위에 올렸다. 그러면서 이들은 병들어 있던 제환공을 방에 가둬 벽을 쌓은 뒤 곡기를 끊어 버렸다. 제환공이 죽음을 맞이한 지 8개월이 지나서야 시체가 발견됐다. 시체는 심하게 썩고 궁궐에는 구더기로 넘쳐났다. 제환공은 그렇게 죽었다.

 #춘추전국시대 또 다른 이야기 한 토막. 오나라 부차는 월나라를 공격해 월나라 왕 구천을 포로로 잡았다. 맹장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라고 했지만 부차는 승자의 위엄을 갖춰 그를 죽이지 않고 노예로 부렸다. 물론 부차의 곁에는 간신 백비의 혀 놀림이 작용했다. 부차는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충성을 보였다. 부차가 병이 들자 구천은 부차의 변을 맛보며 병세를 진단하고 치료해 주기도 했다. 그의 충성심에 감복한 부차는 구천을 월나라로 보냈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와신상담하며 국력을 키웠다. 그러면서 서시라는 미녀를 부차에게 보내 충성심이 끊이지 않았음을 보였다. 부차는 월나라의 국력이 부강해지는 것도 모른 채 서시와 깊은 구중궁궐에서 세월을 보냈다. 물론 오자서의 충언도 묵살한 채 오히려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했다. 오자서가 자결하자 구천은 오나라를 침공했다. 월나라에 쫒겨 도망가던 부차는 허기에 지친 나머지 길에 떨어진 쌀알과 썩은 음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그러면서 구천에게 화의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자 부차는 자결하기 전 “내가 죽으면 저승에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으니 눈을 가려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자신의 목에 칼을 꽂았다. 부차는 그렇게 죽었다.

  #전국을 벌집 쑤셔놓듯 도피행각을 벌이던 유병언씨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구원파 신도들의 교주로, 세월호 실소유주며 재력가였던 유씨의 죽음은 온통 의문투성이다. SNS에서는 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글이 도배하고 있다. 괴담과 음모론, 검·경에 대한 비난, 심지어 정부의 발표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황제와 같은 삶을 누린 유씨가 그렇게 죽을 리 없다는 것이다. 옷과 신발은 명품으로 밝혀졌다. 반면 그의 주변에서 발견된 것은 육포 몇 조각과 빈 소주병, 막걸리병, 세모스쿠아알렌, 가방 등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도 저마다 각기 다른 논리를 펴며 유씨의 죽음을 추론하고 있다. 자연사니, 타살이니, 자살이니 하면서 죽음의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분명한 것은 유씨가 산속 메실밭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유기농 음식과 명품 옷,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리며 떵떵거리던 유씨는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다.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너 자신이 결코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며 걸어라” 세계적인 여배우로 말년을 내전과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는 에디오피아와 수단, 방글라데시 등 빈곤 국가 어린이를 위해 헌신하다 죽음을 맞이한 오드리헵번의 유언 중 하나다. 그녀는 헐리웃 최고의 스타 자리에 있을 때 이런 말도 했다. “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 준 사람들을 위해 이제 내가 봉사할 차례다”라고. 앞서 서술한 비참한 죽음과 오드리헵번이 맞이한 죽음의 무게가 실로 크게 느껴진다. 오드리헵번의 유언에 숙연해짐은 무엇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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