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칼럼> 신뢰와 원칙은 유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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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칼럼> 신뢰와 원칙은 유효한가
  • 이영수 기자
  • 승인 2014.06.3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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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게 그런 핑계 대지마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지금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지난 1990년대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강타했던 가수 김건모의 노래 ‘핑계’라는 노랫말의 일부다. 지금 들어도 흥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이 노랫말 속에는 흔히 우리가 현학적으로 사용하는 사자성어가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서로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자는 의미다. 상대의 생각이나 그런 말을 하는 이유 등은 듣지도 않고 자기 주장만 펼치면 그건 토론이라기보다 말싸움이다. 역지사지가 사람 사는데 기본 원칙이 된다는 것을 간파한 맹자는 후학들에게 역지사지의 원칙을 강조했다. 

 # "너는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을 지금 누가 해도 적합한 것인지 아닌지, 즉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이 보편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를 생각하고 그와 같은 기준에 적합하도록 행동하라"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자신의 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말 역시 앞서 언급한 역지사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철학적 용어로 ‘논리적 보편화 가능성’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칸트는 한발 더 나아가 두 가지 도덕적 원칙을 보탠다. “네가 특정한 사람의 요구나 제안을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이 똑 같은 것을 요구 또는 제안할 경우 동일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 수용 가능성’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또 칸트는 “특정한 사람에게 자신이 들이대는 잣대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똑 같이 그 잣대를 들이대라”는 것이다. 이것을 ‘논리적 적용 가능성’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이 지켜지면 법은 물론이고 윤리가 바로 설 것이라고 칸트는 내다봤다.

 # “아무리 이름 값이 있는 선수라도 소속 팀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라면 대표팀에 뽑지 않겠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라는 비참한 성적을 거둔 홍명보 감독이 지난해 6월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내세운 원칙이었다. 축구팬은 홍 감독의 이러한 원칙에 동조하고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홍 감독은 소속 팀 벤치만 지키며 극도의 부진한 경기력을 보였던 박주영 선수를 대표로 발탁했다. “그만한 골잡이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국민들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홍 감독을 믿었다. 월드컵 본선 직전 가진 튀니지와 가나의 평가전에서 박주영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래도 홍 감독은 “문제없다”며 쏟아지는 비난을 무시하고 그를 월드컵 본선에 출전시켰다. 스스로의 원칙을 내세우고 그것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채 월드컵 본선을 치렀지만 결과는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줬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표현했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그에게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 것 같다. 스스로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다.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그의 고유 이미지가 훼손되면서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때 국가대개조론 차원에서 당시 정홍원 총리에 책임을 물어 경질성 사임을 승인했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국정이 바뀌는 듯 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안대희, 문창극 후보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지만 이들은 각종 상처만 남긴 채 후보자 지명자 선에서 자진 사퇴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국론분열과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고, 개혁 과제를 추진하기 위한 시간도 별로 없어서 정 총리를 유임한다”고 설명했다. 높아진 검증 기준도 문제 삼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신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세월호 책임을 진 정 총리가 세월호 이후 국개개혁의 적임자라는 것은 백번 양보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 원칙을 세웠으면 그 원칙을 따라야 한다. 설령 그 원칙이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간 독배가 될지언정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그 원칙이 국민에게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라면 바꿔야 한다. 여기엔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이 바꿔져야만 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대국민 성명에서 사망자의 이름을 거론하며 굵은 눈물을 흘리던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원칙과 신뢰의 진정성 회복을 위해 천막당사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열린 마음으로 국민 대통합을 부르짖던 그 때로 돌아가야 하지는 않을까. 국민의 입장에 서서 역지사지하는 심정으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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