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들이여, 그저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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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들이여, 그저 착하게 살자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4.05.0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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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아라 칼럼'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약한 자들이여,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다 하더라도 아무 말 하지 말자. 우리는 힘이 없고 초라한 무지랭이에 지나지 않는다. 입을 여는 순간 우리의 세 치 혀는 순식간에 한 치로 오그라들게 될지도 모른다.

 칼을 빼들지도 말자. 칼을 빼드는 순간 한 번 휘둘러보기도 전에 우리는 소문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어처구니없게도 도리어 우리의 가슴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저 착하게 살자.

 이 땅의 거대한 성은 오로지 우리들의 힘으로 세웠으나, 우리는 단 한 번도 그 성에 들어가 보지 못하고, 황량한 허허벌판에서 바람을 맞으며 비에 젖으며 우리의 차가운 육신을 누이게 되리라.

 우리의 피와 땀으로 세운 굳건한 성은 세월이 가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그 앞에서 제아무리 문을 열라고 고함을 치고 애원을 해도 결코 성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겨울로 들어가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봄이 온다는 아름다운 환상 속에서 착하게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약한 자들이여,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자. 들어서 득이 될 게 없고, 보아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진실을 듣기도 어렵고 실체를 보기도 어렵다. 그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알맹이가 보이지 않는 껍데기를 쥐고 우리는 가볍게 흩날리는 바람소리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껍데기를 여는 순간 알맹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이고, 소리를 잡는 순간 우리는 그 소리를 따라 허공으로 날려가 흩어져버릴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도록 우리는 이 시대 이 땅에 태어났다.

 약한 자들이여, 주장하지 말자. 정의와 선의 기치旗幟는 우리만의 전유물이 되었다. 아무도 그 말의 의미를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알아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힘은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재물은 어떻게 만들어져서 누구를 위해 사용되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이고, 입을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이다. 또한 싸움판이 되면 앞으로 떠밀려 먼저 스러져 가는 것도 우리이다.

 우리가 부르짖는 정의와 선은 이제 정체불명의 얼굴을 하고 베일 속으로 사라져 가는 중이다.

 그 시작은 이미 오래 되었으며, 또한 영원히 그렇게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생명체들의 본능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이므로. 강한 자들은 그 욕망의 정상에 굳건하게 서 있으므로.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는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 식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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