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여 용서하라. 어쩔 수 없는 이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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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여 용서하라. 어쩔 수 없는 이 시대를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4.04.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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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아라 칼럼'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자연으로서의 생명체는 자연에 가까울수록 안전하다. 자연은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을수록 건강하다. 수천 년 동안 환경에 길들여지면서 가장 완벽한 상태로 자신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은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고 보호할 줄도 안다. 무모한 변화와 성장은 스스로 제어하고 절제한다. 부득이한 상처도 치유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위대한 자연의 능력이다.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 인간의 편의를 기준으로 자연을 재단하고 변화시킨다. 수천 수만 년 동안 안정된 모습으로 자리잡은 자연을 서서히 또는 일시에 무너뜨리기도 하고 바꾸기도 한다. 이성과 지능을 갖춘 자랑스러운 능력으로 자연성을 넘어 가히 신의 권리에까지 육박하는 듯하다. 인간도 자연의 하나임을 강력하게 부인하는 자세로 보인다. 가히 자연에 대한 도전이고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석할만하다.

 과학과 문명에 대한 믿음이 도를 넘었다. 과학과 문명이 인간에게 대단히 유익한 것이라는 판단이 이 믿음의 바탕으로 보여진다. 편리성에 입각한 치열한 속도전이나, 전 지구를 하나의 틀로 만들고 있는 네트웍 환경이나, 거대화되어가는 시설물과 이동 수단들이 갈수록 그 변화의 극단으로 치달리고 있다. 의학의 발전이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데 성공함으로 해서 의학 역시도 스스로 자만심에 빠져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하다.

 과학과 문명에 대한 신뢰는 어쩌면 자연과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거대한 시설물과 기구들은 한두 인간의 존재 문제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한 인간을 위해 사라질 수 있거나 그 동작을 정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야흐로 기계문명에 끌려다니며 궁극적으로는 노예로 전락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어쩌다가 저런 거대한 것들을 만들어 내어 그 앞에 서기만 하면 인간의 모습은 초라해져 버리는 것일까. 무엇을 위한 변화이고 발전이었을까.

 진도 앞바다의 여객선 침몰 사건을 지켜보면서 과학과 문명의 발전이 대형화로 치달림과 동시에 과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에 빠진 이 시대의 고뇌와 아픔을 읽는다. 과학과 문명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상승시켜준다는 믿음이야 그렇다치고, 이런 발전이 사고가 날 때마다 대형사고로 이어진다면 이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과학의 주체도 인간이며, 문명의 주인도 인간이다. 결국에는 인간이 스스로 발전된 과학과 문명을 제대로 운용하여야 대형사고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인 아름다운 꽃들이 바다에 지고 있다. 보도방송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과학 현실이나 운용능력이 안타깝게도 저런 정도의 수준이었구나를 절감한다. 꽃들이여 용서하라. 어쩔 수 없는 이 시대를.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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