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바람은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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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바람은 불고 있다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4.03.17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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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아라 칼럼'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얘야, 저기 저 관모봉 위에
울긋불긋한 것이 벌써 진달래냐?“

“아이 엄니도
무슨 진달래가 벌써 피겠어요.
오늘 아침 애기씨가
빨간 블라우스를 찾더니
그 블라우스가 보이지 않네요”

산본 수리산 밑에 사는 김동호 시인의 시집 '수리산 연작' 에 실려있는 「제일 먼저 피는 꽃」이다. 봄이 오면 먼저 피는 꽃들이 있다. 목련,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등 꼭 이름이 있는 꽃들만 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름 모를 들꽃들도 많다. 겨울이 가면 이 꽃들이 앞다투어 핀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蘇生이라고 말한다. 蘇生은 거의 죽어가다시피 하다가 간신히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蘇生이라는 말의 앞에는 견디기 어려운 독한 겨울이라는 말이 숨어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봄꽃들이 주는 환희는 우리의 憑依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봄꽃들에 기대어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지만, 사실은 이 봄꽃들보다 우리의 몸이 먼저 蘇生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애기씨의 빨간 블라우스이다. 봄은 생명이 눈뜨는 계절이다. 생명체의 에너지는 이 봄에 가장 왕성하다. 생명은 性이 그 본질이다. 봄을 맞이하면서 피기 시작하는 어떤 꽃보다도 애기씨의 몸에서 피는 性의 생명력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이고 그것은 어떤 꽃보다도 먼저 피는 우리의 몸꽃인 것이다.

꽃은 자손의 번식을 위해 핀다. 그러므로 꽃은 아시다시피 유혹이다. 얼마나 급했으면 겨울이 다 가기도 전에 서둘러 피어 개중에는 얼어죽는 꽃도 있으랴. 설령 얼어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이 봄꽃들의 생명을 향한 갈망은 절대로 머뭇거리지 않는다. 숨을 죽이지도 않는다. 과감하고 당당하게 온누리에 피어 그 무한한 에너지를 뿜어댄다. 그래서 그 에너지 역시 보는 이의 몸이 짜릿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러나 꽃이 제아무리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하더라도 봄을 맞이하는 인간의 소생 에너지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감추는 방법을 터득한 영물이다. 인간은 동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를 희망하는 이성적인 점잖은 품격을 가지고 있다. 다른 생명체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이런 능력 때문에 차라리 憑依를 선택한다. 자신의 몸속에 피는 꽃을 적당히 숨기는 방법을 안다. 자신의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살며시 눌러두는 방법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눌러두고 감추어 둔다고 하여 사라지거나 점잖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 봄이 가기 전에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있다. 존재의 본질인 생명 에너지이므로. 바야흐로 봄바람은 불고 있다.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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