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9월 6일] 언론인 '이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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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 9월 6일] 언론인 '이규태'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1.09.0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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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1933년 오늘 언론인 이규태(李奎泰 ~ 2006년 2월 25일) 선생이 태어났다.

전주사범학교,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동안 군산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59년 3월 1일 공채 2기로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1965년 조선일보의 첫 베트남 특파원으로 종군 취재했던 그는 이후 문화부, 사회부, 편집부 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이어  논설위원실장, 논설고문, 주필을 거쳐 정년퇴임하는 날까지 다시 이사대우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다.

조선일보는 23일 투병중인 이 전 고문의 구술을 바탕으로 1면에 <이규태 칼럼>의 마지막회를 실었다.<br><br>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br>
조선일보는 2006년 2월23일, 투병중인 이 전 고문의 구술을 바탕으로 1면에 '이규태 코너'의 마지막회를 실었다.

1968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개화백경’을 시작으로 ‘6백년 서울’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획연재물을 썼으며, '한국인의 재발견', '한국인의 의식구조', '신바람의 한국학' 등의 저서가 있다.

'조선일보'에 1983년 3월부터 2006년 2월 23일까지 '이규태 코너'를 연재하면서 23년 동안 6702회를 기고하며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칼럼 기록을 세웠다.

지하서재에 책이 가득할 정도로 풍부한 독서량에 근거한 많은 식견과 깔끔한 문체로 쓴 이규태 코너는 한민족 우월주의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근검절약에 대한 그의 칼럼이 실린 바 있다. 

2004년 조선일보 정년퇴임 후에도 칼럼을 계속 기고하다가, 2006년 2월 25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하여 별세했다. 향년 73세.

*출처 : 위키백과, 나무위키, 인터넷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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