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9월14일]남북화해 및 경제협력에 이바지한... ‘정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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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9월14일]남북화해 및 경제협력에 이바지한... ‘정몽헌'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1.09.1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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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기자]1948년 오늘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아들로 여러 차례 북한을 오가며 금강산 관광의 물꼬를 트는 등 남북 화해 및 경제 협력에 이바지한 정몽헌이 출생했다.

그는 현대전자(지금의 SK 하이닉스)를 창립해 단기간에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로 키워냈고 '왕자의 난'을 통해 공식적인 현대그룹의 후계자가 되었으나 형제들의 다툼과 유동성 위기로 여러 회사가 그룹에서 분리되자 자리에서 물러나 대북사업에만 전념하다 2003년 8월 대북송금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투신자살했다.

2003년 금강산 육로관광 사전답사에 앞선 정몽헌 [출처=현대그룹]
2003년 금강산 육로관광 사전답사에 앞선 정몽헌 [출처=현대그룹]

▲비운의 황태자

어린 시절 문학가의 꿈을 가진 정몽헌은 1948년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5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으며 보성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과 미국 페어레이 디킨스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각각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몽헌은 1975년 현대중공업(주) 사원으로 현대그룹에 입사한 후 현대건설 상무이사를 거쳐 1981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섰다. 해운업계가 불황에 빠져 있던 1980년대 “불황기에 선박을 건조해 호황기에 대비한다”는 전략으로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유조선, 벌크선, LNG 수송선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해 흑자경영의 기반을 마련하여 현대상선을 국내 최대의 운송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1984년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첨단산업의 필요성을 느낀 정몽헌은 경기도 이천의 불모지에 현대전자를 설립하고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경영으로 1989년에 첫 흑자를 기록하여 업계를 놀라게 했으며 1999년 LG반도체를 인수한 현대전자는 D램 부문 세계 1위로 급부상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1998년 현대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해 금강산 관광 등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을 관장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강력한 후계자로 떠올랐고 2000년 3월에는 이른바 '왕자의 난'을 통해 형 몽구(현 현대자동차 그룹 명예회장)를 제치고 공식적으로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이후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그룹에서 분리되고, 설상가상 그룹의 모태 격인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반도체까지 유동성 위기로 그룹에서 분리되자 현대그룹은 재계 10위권 밖의 소그룹으로 전락했고 결국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현대아산 회장으로 취임해 개성공단 개발과 금강산 육로관광 등 대북사업에만 전념한다.

그러나 2002년 9월 5억 달러의 대북 불법 송금 사건이 터지면서 2003년 검찰 조사를 받았고, 추진하던 대북사업의 차질과 현대그룹의 경영 악재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2003년 8월 4일 종로구 계동 사옥에서 의문을 남긴 채 투신하여 삶을 마감했다.

 

*출처: 다음 백과 /두산 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현대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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