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9월3일] 독립운동가 ‘이범진’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9월3일] 독립운동가 ‘이범진’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1.09.03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범진
이범진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852년 오늘 구한말 공조참판 등을 지낸 정치인이며 순국지사인 이범진 선생이 태어난 날이다.

그의 자는 ‘성삼’이며 본관은 전주로,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17대손이다.

조선말기와 대한제국 때 이조참판, 형조참판, 공조참판 등을 역임했고, 아관파천 직후 법부대신 직책에 올랐다.

일제를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조선의 가교 역할을 했던 이범진은 을사늑약 이후 조국의 패망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제2차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던 이위종은 이범진의 차남이며, 대한제국 군주제 부활 기원 성향 복벽주의 독립운동가 이범윤은 이범진의 육촌 동생이다.

▲ 생애 초기와 정계활동

이범진은 형조판서, 판의금부사, 어영대장 등을 지낸 조선 말기 무관 이경하의 서자로 태어났다.

고종 때인 1873년 생원시 입격 후 1879년 식년문과에 병과 급제하고 고종과 명성왕후의 총애를 받아 법부대신 서리 직책에 올랐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주도로 발생한 1895년 8월 을미사변으로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같은 해 10월에 춘생문 사건으로 고종을 피신시키려다 실패하고 중국으로 몸을 피했다가 1896년 귀국했다.

그후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킨 아관파천에 성공, 친러 내각의 법부대신에 임명됐다.

법부대신 이범진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배후를 캐는데 주력하다가 일본 정부가 가장 기피하는 인물이 된다.

▲ 조선과 러시아의 가교 역할

일본의 압박으로 신변이 위험해지자 고종의 배려로 1896년 말 주미 공사로 떠나 3년 동안 미국 전권 공사로 근무했다.

1899년 중반에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3국 겸임 공사로 임명됐으나 부임하지 않다가 1900년 초에야 파리에 부임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의 견제와 간섭을 피하고자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강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이범진은 190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상주하는 초대 주러 전권공사로 임명돼 대한제국의 주권을 지키고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특히 일제의 감시를 피해 고종 황제와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제 사이의 이해를 증진시키고자 가교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

▲ 을사늑약 이후의 활동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면서 외국에 주재하는 대한제국의 공사관을 폐쇄하고 모든 외교관 철수를 명령했다.

하지만 이범진은 이에 불응하고 계속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주재했다가 1906년 공사관이 폐쇄된 이후 주거지를 옮겨 1910년까지 여권발급 등 공사업무와 비공식적인 외교활동을 통해 국권 회복에 주력했다.

1907년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특사단을 파견하고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영어, 불어, 러시아어에 능통한 그의 아들 이위종을 이상설, 이준을 돕도록 헤이그에 동행시켰다.

또한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대한제국 특사단의 신변 보호를 청원하여 특사단이 헤이그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했다.

1908년에는 아들인 이위종에게 10,000 루블을 지참시켜 연해주에 파견해 연해주 지역 항일 의병단체의 무장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 망국과 함께 생 마감

이범진은 1911년 1월 26일 조국의 패망에 절망해 목을 매어 자결했다. 자결할 때 고통을 피하고자 머리에 권총 3발을 쏘았으나 모두 빗나가 벽과 천정에 박혔다.

당시 서울 주재 러시아 총영사 소모프는 이범진의 자살은 “적들에게 가장 잔인하고 확실한 복수”라고 평가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유해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에 있는 우스펜스키 묘지(현재의 북방묘지)에 안장됐으나 소련 시절의 대대적인 묘지 재구획 공사로 그의 유해가 멸실돼 지금까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내용을 알게 된 김대중 대통령은 그가 묻혔을 곳으로 추정하는 곳에 순국비를 세우게 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그의 아들 이위종은 러시아에 정착 후 볼셰비키 장교로 활약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