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7월23일] 한국전쟁 파병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7월23일] 한국전쟁 파병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
  • 김상옥 기자
  • 승인 2021.07.23 0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일레 셀라시에
하일레 셀라시에

[미디어인천신문 김상옥 기자] 1892년 7월 23일은 에티오피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면서 6·25 한국 파병으로 잘 알려진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태어난 날이다.

그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한편 노예제도의 폐지 등 근대화 정책을 추진한 인물이다.

이탈리아의 침략으로 잠시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1941년 다시 독립을 회복하고, 절대권력을 장악했다.

1955년에는 헌법을 개정해 입헌군주제를 확립했으며, 도로 ·학교 등의 건설에 힘썼다.

아프리카통일기구(OAU)의 지도자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국내의 기근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던 중에 1974년 군사 쿠데타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1968년 5월 대한민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 쿠데타

에티오피아 남부 해안 지방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하일레의 본명은 라스 터퍼리 머콘는이다.

가까운 혈연으로는 아두와 전투에서 이름을 떨친 영웅 메넬리크 2세의 사촌 아들, 즉 종질에 해당한다.

어릴 적부터 총명했다고 알려진 하일레는 젊은 나이부터 각지의 주지사를 역임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 말년에 이르러도 중요한 사항 모두를 암기하고, 메모의 종류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1916년 쿠데타를 일으켜서 이야수 5세를 폐위시키고, 메넬리크 2세의 딸로 여제로 등극한 자우디투의 황태자이자, 섭정이 되어 실권을 장악한다.

1924년 4월에는 유럽으로 외유를 떠나 에티오피아의 국제연맹 가입을 실현했다. 당시 에티오피아에 영향력이 있던 이탈리아 왕국, 영국, 프랑스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일본에 접근했다.

▲ 황제 즉위

1930년 4월 선제였던 자우디투가 사망하자 이를 승계해 하일레 셀라시에라는 재위명으로 즉위한다. 같은 해 11월 2일에 대관식이 이루어졌다.

1931년 7월 16일에 7장 55조 갖춰진 에티오피아 제국 최초의 성문 헌법인 헌법을 제정하고 노예 제도를 철폐했다.

그러나 사회 체제 자체의 개혁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게베레라는 소농 지역 제도도 보존되었다.

1935년 10월 3일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왕국이 아두와 전투의 보복을 내걸고 에티오피아를 침공하면서,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발발했다.

이듬해 1936년 3월 마이체우 전투에서 이탈리아 군은 독가스를 사용, 제국 친위대를 포함 에티오피아군을 괴멸시킨다.

▲ 복위, 그리고 한국전 파병

그 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5월 2일에 철도로 지부티로 가서, 지부티를 통해 영국 런던에 망명했다.

이탈리아의 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1936년부터 에티오피아 황제를 5년간 겸임,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제국을 통치했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이탈리아 왕의 에티오피아 황제 겸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1941년 영국은 이탈리아군을 에티오피아에서 쫓아내고 하일레 셀라시에를 복위시켰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하일레는 국제 연맹에서 자신이 호소한 집단안전보장의 실천을 강조했다.

또한 한국 전쟁에 유엔군으로 에티오피아 군을 참여시키는 등 냉전 구조 속에서 친 유럽 정책을 펼치면서도 소련이나 중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종전 후인 55년 11월 하일레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중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 치적과 오늘날의 평가

1961년의 베오그라드의 비동맹 국가 정상 회의에 참석, 제3세계의 입장을 강화해 1963년에 설립된 아프리카통일기구(OAU 현재 아프리카 연합)의 초대 의장 자리에 올랐다.

내정에서는 헌법 개정, 군사 현대화 등의 개혁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황제 독재를 계속하는 구체제를 유지했다.

이 때문에 부유층은 부패를 일삼았기 때문에 경제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고 국민의 생활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1960년대의 국민 일인당 연간 소득은 평균 70달러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락하는 등 다양한 모순을 만들고 있었다.

결국 만년에 하엘레 황제는 국민에게 민심을 잃었고, 1974년에 멩기스투 육군 소령에 의해 폐위됐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