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7월 12일] 한국형 보건학 정립한 의학자 '권이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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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 7월 12일] 한국형 보건학 정립한 의학자 '권이혁'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1.07.12 09:47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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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오늘은 한국형 보건학을 정립한 의학자 권이혁(權彛赫 1923년 7월13일 ~ 2020년 7월12일)씨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그는 서울대의대 교수, 서울대병원장, 서울대 총장, 보건사회부 장관, 대한보건협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다.

▲ 생애

1923년 경기 김포에서 태어난 그는 194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의과대학원에서 의학석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보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에서 예방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65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대학교육행정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해 모교의 의과대학장(1970~76), 의학교육연수원장(1975~76), 보건대학원장(1976~78), 서울대학교 병원장(1979~1980)을 역임하고 1980년에는 제15대 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임기를 채우기 전인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총장직을 그만두고 제26대 문교부 장관(1983~85)을 맡았다. 이후 한국교원대학교 총장(1985~88)을 거쳐 제22대 보건사회부 장관(1988~89), 제3대 환경처 장관(1991~92) 등을 역임했다.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성균관대학교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2020년 7월 12일 생일 전날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7세.

한국형 보건학 정립

그는 건강인을 포함하는 인구집단의 건강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의학영역, 보건학을 한국에 정착시켰다.

보건학은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불건강 요인을 연구, 탐색하고 그 요인의 효과를 제거 또는 경감하는 수단을 개발해 인구집단 전체의 건강을 증진하고자 하는 새로운 의학영역이다.

보건학의 학문적 개념과 이념을 한국에 처음 도입해 실정에 맞는 보건학을 연구, 개발해 정립했다. 이를 위해 1960년대부터 인구집단에 대한 사회의학적 및 생태의학적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도시인구, 영세민/저소득층 인구, 맹인, 소아인구, 노인인구, 임산부 인구 등을 연구대상으로 해 특수성이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반영되는 발전된 한국형 보건학을 정립했다.

1960년대부터 한국 보건학을 개발, 정립하는 학문적 활동을 지속했다. 그의 저서 ‘최신보건학’은 1982년 대한민국학술원 저작상을 수상하며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 보건학은 각 대학 및 대학원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개설, 운영되는 교양 또는 전공 교과목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1988년 보건사회부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국민보건체계를 확립하여 국민보건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영양, 환경, 질병관리, 인구의학, 식품공중위생관리/의약품 안전성 유효성 관리, 특수질환관리 등의 주요 국민보건향상 관련 기술개발과 함께 정책 개발을 선도했으며 보건사회행정의 과학화를 추진, 발전시켰으며 전 국민 의료보장체제를 완비했다.

새로운 의학교육

1970년대 초까지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장직을 수행하면서(1970~1976), 한국의학교육 체제의 전면 개편을 위한 연구 사업을 추진했다. 

한국 처음으로 통합교과목(일명 'Block Lecture')을 신설, 운영하는 교과과정 개편을 단행했고, 교육자 연수교육 체제를 개발했다. 또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학습 및 교육원리에 관한 연수교육을 담당하는 ‘의학교육연수원’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산하 기구로 설립, 운영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0년 초에 개발, 개편한 의학교육 체제는한국 의학이 연구와 교육/인력양성에 있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1990년 3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10대 회장으로 취임후,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제 신설을 대정부 건의하여(1992년), 2004년에 과학부 부총리급 승격이 이뤄졌고 이를 통해 과학기술인의 권익신장에 크게 기여했다.

민간차원의 남북과학기술 교류시작

1990년 4월 남북 민간과학기술교류협의회를 창립하고, 그 해 ‘8.15범민족대회’에 북한 과학기술계 인사들을 초청했으며, 북측의 조선과학기술총연맹과 과총 간의 협의체 구성을 전제로 한 정식교류를 제의하기도 했다.

이 초청은 성사되지 못했으나 1991년 8월19일 중국 지린성 옌지시에서 열린 ‘91 중국 국제과학기술학술대회’에서 남북한 과학기술인의 첫 번째 공식 만남이 이뤄졌다.

*출처 : 위키백과,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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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7-12 23:32:37
파리 1대(프랑스), 옥스포드대(영국), 하이델베르크대(교황윤허,독일),야기엘로니안대(폴란드) 총장등 참석.

http://blog.daum.net/macmaca/1467

http://blog.daum.net/macmaca/733

윤진한 2021-07-12 23:32:03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의 정통 승계 성균관대는 국내외에서 6백년 넘는 역사를 행정법.국제관습법으로 인정받고 있음.Royal성균관대.세계사의 교황반영, 교황윤허 서강대는 국제관습법상 성대 다음 Royal대 예우.패전국 일본 잔재이자, 불교 Monkey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어왔음

*성균관대로 정통을 승계하기로 하자, 미군정이 향교재단의 재산으로 성균관대 재정에 기여토록 하는 법을 추가로 만들어 주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때 대통령령으로 시작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발행으로 행정법상 조선 성균관 승계를 추가로 법제화. 성대 6백주년 행사때는 대통령.국무총리.교육부 장관 참석하였습니다.

.*성균관대,개교 6백주년 맞아 개최한 학술회의. 볼로냐대(이탈리아), 파리 1대

윤진한 2021-07-12 23:31:26
카이로선언이후 프랑스.소련.폴란드등이 승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법.국내법적 위상을 상기하고, 패전국 일본잔재로 한국영토에 주권이 없어온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패전국 일본잔재로 적산재산 형태)를 국립대로 강행할때, 전국적인 반대와 서울대생들의 등록거부.자퇴등이 있었던 상황도 인식해야합니다.

국제법상 일본이 항복후, 포츠담선언(카이로선언 포함)에 따라, 한국영토에서 일본의 모든 주권은 없어왔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이 없어왔음. 현행헌법 임시정부 구절(한일병합 무효, 을사조약등 불평등 조약 무효, 대일선전포고)에도 맞지 않는게 경성제대 후신 서울대임.해방후 미군정부터 국사 성균관(성균관대)교육을 시켜온 나라 대한민국임.

국사 성균관(성균관대)나라. 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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