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6월 30일] 독립운동가 ‘장진홍’...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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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6월 30일] 독립운동가 ‘장진홍’...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 주도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1.06.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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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장진홍(1895년 7월 27일~ 1930년 6월 30일) 경상도 칠곡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아호는 ‘창여’이다. 오늘은 그가 타계한 날이다.

독립운동가 장진홍

▲군대해산

일본이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면서 장진홍은 황실 경호 명목으로 남겨놓은 조선보병대에서 복무했다. 1916년 조선보병대에서 제대한 그는 동향 선배인 이내성의 소개로 비밀 결사인 '광복단'에 가입해 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독립활동

그는 1918년 만주로 망명했다가 이국필과 함께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해 독립군 부대의 군사 훈련을 시도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가산을 팔아 전국을 다니면서 일제의 3·1 운동 탄압 과정을 조사, 기록한 뒤 번역본으로 만들어 미군에 복무 중인 김상철에게 전달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후 국내의 독립 운동이 위축되자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던 그는 광복단 동지인 이내성의 소개로 전문가에게 폭탄 제조법을 배우게 된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

일제 고관 암살과 중요시설 파괴를 목적으로 폭탄을 직접 제조한 그는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목표로 정하고 단독 거사를 계획했다.

1927년 10월 16일 칠곡의 집에서 폭탄을 제조해 대구까지 운반한 뒤 10월 18일 덕흥여관에 투숙하여 폭탄을 벌꿀 선물로 포장한 다음 여관 심부름꾼 시켜 배달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은행원이 전달된 선물상자를 수상하게 여기고 경찰에 신고한 뒤 건물밖에 뒀는데 상자가 폭발하면서 일본경찰 4명과 은행 사환 1명, 통행인 1명 등이 중상을 입었다.

그해 11월 다시 친척인 장용희를 설득해 경상북도 안동군의 경찰서와 은행지점을 폭파하기로 하고 폭탄 3개를 제조했다. 이듬해 1월에는 영천에 사는 친구 김사실을 찾아가 영천경찰서와 친일 부호 이인석의 집에 폭탄을 던지기로 약속하고, 폭탄 2개를 제조해 두었으나 거사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 두 번의 후속 폭탄 테러 계획은 실행하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건국훈장 국민장 추서

장진홍 동상

폭파사건 이후 경찰의 수사망이 점점 조여오자 일본으로 피신하여 오사카의 동생 집에 은신해 있었다. 그러나 최석현 등을 앞세운 일본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1929년 체포됐다. 

이듬해 최종심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대구 형무소에서 장진홍은 자결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으며, 현재 경북 구미에 동상을 세웠다.

*출처: 위키 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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