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6월 16일] 시인 ‘김수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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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6월 16일] 시인 ‘김수영’작가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1.06.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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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달나라의 장난' '헬리콥터' '폭포' 등을 쓴 시인 김수영(1921년 11월 27일 ~ 1968년 6월 16일). 오늘은 그가 사망한 날이다.

▲생애

1921년 11월 27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의 8남매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 도쿄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했다. 일제강점기 말에 학병 징집을 피해 그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중국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했다.

광복과 함께 국내로 귀국해 시 창작을 시작했다. 또한 연희전문학교에서 잠시 수학했으나, 졸업하지 못한 채 중퇴했다.

▲활동

1947년 예술부락에 ‘묘정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그는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 전쟁 때 서울을 점령한 조선인민군에 징집되어 참전했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됐다. 김수영은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해 통역 일과 잡지사, 신문사에서 번역일도 했다.

1957년 제1회 시인협회상을 받았으며, 1959년 첫 단독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춘조사에 출간했다. 이 시기의 시들은 바로 살고자하는 의지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사이의 갈등과 슬픔의 극복이 중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1968년 6월 15일 김수영은 귀가하던 길에 서울 마포구 구수동에서 인도로 뛰어든 좌석버스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진 뒤 다음날 새벽에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작품 세계

2013년 그가 생전에 거주했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김수영 시인을 기리고 그의 시문 및 시학의 업적을 기리는 김수영문학관이 설립됐다. 

한국의 대표적 참여 시인으로 평가받는 김수영은 초기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시를 주로 쓰다가 4.19 혁명을 기점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탄압과 압제에 맞서 적극적으로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하는 시를 썼다.

당시 김수영 시인은 "4.19 때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통일을 느꼈소....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니까!"김수영 시인은 이어령과의 논쟁을 했는데, "불온한 문학을 발표할 수 있는 사회가 정상사회"라고 비판했다.

평론가 김현은 그를 "1930년대 이후 서정주·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평가한다.

그의 사후 민음사에서는 그를 기념하는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해 1981년 이후 매년 수여하고 있다.

▲저서

시 ‘풀(시인)’,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폭포’,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합동시집, 1949년), ‘달나라의 장난’(1958년), ‘거대한 뿌리’(1974년),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6년),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년), ‘퓨리턴의 초상’(1976년), 번역서 ‘카뮈의 사상과 문학’(김붕구 공역, 1958년), ‘현대문학의 영역’(이상옥 공역, 1962년) 등이 있다.

*출처: 위키 백과 / 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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