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월 28일]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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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월 28일]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타계
  • 여운균 기자
  • 승인 2021.01.28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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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균 기자]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발해 전세계 전쟁 피해 여성들의 인권을 신장하고, '나비기금'을 발족하는 등 인권운동가와 평화운동가로 활동한 ‘김복동(1926년 4월 19일~2019년 1월 28일)’ 할머니가 타계한 날이다.

그녀는 67주년 세계 인권 선언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수상했다.

2019년 1월 28일 지병으로 사망 당시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님의 빈소에 조문했었다.

▲ 생애와 활동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복동 할머니는 만14세이던 1940년, 일본군에게 속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이후 8년 동안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끌려다니며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받았다.

그 후 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만인 1948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 할머니는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실을 고발하고 1993년 유엔인권위원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미국·일본·유럽 등에서 피해 사실의 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했고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 했다.

그녀는 2012년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기금’을 설립하고 전쟁·무력 분쟁지역의 어린이를 위한 장학금으로 5000만원을 기부했다.

2015년에는 국제 언론단체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영웅’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부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할머니의 노력을 인정해 2015년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수여했고 2017년에는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한 '김복동 평화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2015년 이후에는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규탄하며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했다.

2016년부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조선학교 학생 6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할머니는 병중에서도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3000만원을 지원했다.

암 투병 중이던 2018년 9월 그녀는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을 위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1년여의 암 투병 끝에 2019년 1월 28일,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김복동 평화상’

수요집회 중, 두번째 줄 중앙에 김복동 할머니
수요집회 중 두번째 가운데 중앙에 김복동 할머니

전 세계 곳곳의 무력분쟁 상황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국외 활동가 및 여성인권단체를 발굴·지원해 전시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다지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2018년 제1회 김복동평화상 수상자는 우간다 신의 저항군 내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골든위민비전의 아찬 실비아 오발 대표가 수상했다.

2019년 제2회 수상자로는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코소바고문피해자재활센터(KRCT)의 활동가인 코소보 생존자 바스피예 크라스니치 굿맨이 선정됐다.

*출처: 위키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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