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12월14일]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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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 12월14일]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0.12.14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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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초대 대통령
미국 초대 대통령

[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1799년 오늘은 미국 초대 대통령(1732년2월22일~1797년12월14일) 조지 워싱턴이 사망한 날이다. 

처음에는 미국 국민들이 그를 국왕과 같은 군주로 인식하여 서로 거리감을 느꼈으나, 점차 미국의 건국과 혁명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정치인으로 등극했다.

1775년 대륙회의에서 워싱턴은 영국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된 대륙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워싱턴은 미국 독립 전쟁 첫 전투인 보스턴 전역의 렉싱턴 콩코드 전투부터 파리 조약으로 독립을 승인 받을 때까지 총사령관으로서 복무했다.

워싱턴은 한편으로는 금방이라도 와해될 것 같았던 대륙회의를 주재하고, 각지에서 모인 결속력 없는 군대를 통솔하면서, 동맹국인 프랑스와 의견을 조율했다.

백악관 공식 초상화
백악관 공식 초상화

1783년 전쟁이 끝난 후 워싱턴은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가 개인적인 삶을 살았다. 당시의 영국의 국왕인 조지 3세는 워싱턴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에 대해 "만약 워싱턴이 그리한다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었다.

1787년, 조지 워싱턴은 연합 규약을 대체하는 미국 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기 위해 열린 필라델피아 헌법 제정 의회를 주재했다.

워싱턴은 1789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써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연방정부가 수립된 후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정부 각 부서의 관례와 임무에 대한 기초를 놓았다.

워싱턴은 해외 문제에 대해 어떠한 간섭도 취하지 않는 정책을 택했다.

1795년 워싱턴은 전쟁을 회피하고자 영국과 제이 조약을 맺었다. 토머스 제퍼슨과 그가 이끄는 민주-공화당이 영국과의 조약을 반대하였지만, 워싱턴은 자신의 특권을 사용하며 강행했다. 

워싱턴은 강력한 중앙 정부를 수립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 부채를 조성하였고, 효율적인 세금 제도를 시행하였으며, 국가 은행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워싱턴은 공식적으로는 연방당 소속이었지만 퇴임 연설에서 당파성과 파벌주의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의 가담 등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공화주의적인 덕목을 강조했다.

워싱턴은 1799년에 향년 67세로 사망했다.

헨리 리는 장례식 추도 연설에서 워싱턴을 "전쟁에서도 으뜸, 평화에서도 으뜸, 그리고 그의 국민들 마음 속에서도 으뜸"(First in war, first in peace, and first in the hearts of his countrymen)이라 칭송했다.

두 번에 걸친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 무렵 종신 대통령 권유를 사양하고 ‘친구들과 동포시민 여러분!’의 고별사를 남기고 퇴임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은 시작과 끝이 나 보다는 국민과 민주주의 국가가 우선이었다.

1달러
1달러

대통령제를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미국에서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직을 구체화하는 업적을 이룩하고, 떠나는 때를 아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대통령이었으며, 미국의 대중민주주의를 창조해내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역사학자들은 꾸준히 그를 가장 훌륭한 미국 대통령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미국의 1달러 지폐에는 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출처 : 위키백과/ 다음백과 / 인터넷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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