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11월 23일] 조선의 폭군 '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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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 11월 23일] 조선의 폭군 '연산군'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0.11.2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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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출처:온라인커뮤니티)
연산군

[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1476년 11월 23일 태어난 연산군은 조선의 제10대 왕이다. 조선 성종의 장자로 폐비 윤씨의 소생이며, 비는 영의정 신승선의 딸이다. 존호는 헌천홍도경문위무대왕(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이다.

모후 폐비 윤씨의 폐출 이후 정현왕후의 손에 자랐으나, 자신의 생모가 폐비 윤씨임을 알았다. 그 뒤 어머니 윤씨를 왕후(王后)로 추숭하려 하자, 성종의 유명을 내세워 왕비 추숭을 반대한 사림파 문인들과 충돌하다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빌미로 사림파를 제거했다.

또한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빌미로 발생한 갑자사화에서는 사림파와 양대 파벌을 이루던 훈구파와도 절연하여, 사림파를 적대세력으로 훈구파를 비호감세력으로 만들어 독단정치에 접어들었다.

그 뒤로 사림파의 간쟁을 일절 무시하고 훈구파의 공적을 과거로 치부해 정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했다.

왕권 견제기관 이였던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예문관 등을 대폭 축소하거나 감원했다.

유가와 불가의 대표적인 기관인 성균관과 원각사를 기생 양성소와 유흥장으로 만들고 각도에 채홍사(採紅使)·채청사(採靑使) 등을 파견해 미녀와 양마(良馬)를 구해오게 했으며 이때 선발해 들인 흥청들과 그들의 식비, 유흥비 등으로 국가 정사가 피폐해진다 하여 흥청망국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 말은 곧 흥청망청의 어원이 됐다.

치세 후반에는 경연 등을 없애 학문을 중단했고, 사간원과 사헌부를 폐지하여 언로(言路)를 막기도 했다

종친을 두고도 파격적인 언행을 일삼아 생모 폐비 윤씨의 사사에 관여된 성종의 후궁들을 제거한 뒤 무덤 줄만 못한다 하여 그 시체를 들판에 짐승의 먹이로 내다버리게 했다.

인수대비의 초상 때는 인수대비가 3년상을 받을 사람이 못 된다 하여 하루를 1개월로 계산해 25일만에 장례를 마쳤는데 이를 역월지제라 한다. 그의 인수대비 25일장은 인조의 소현세자 7일상과 함께 조선이 망할 때까지 두고두고 성리학자와 선비들 사이에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사림파의 증폭되는 불만과 훈구파의 부당하다는 여론 끝에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었으며 강화군 교동도로 유배됐다. 

유배생활중 그는 폐세자 황이 사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식음을 전폐하며 괴로워 했다. 유배 2개월 뒤인 그해 음력 11월에 역질을 앓다가 11월 6일 역질, 화병 등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 부인인 폐비 신씨가 보고 싶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사망 후 민중에서는 독살설이 퍼졌다고 한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향년 31세였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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