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충북 영동 반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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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충북 영동 반야사
  • 최애영 사진기자
  • 승인 2020.05.0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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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반야사를 다녀왔다.

반야사를 문수도량이라 하는데는 세조대왕과 문수보살에 얽힌 실화에 기인한다.

조선 제 7대 임금인 세조대왕이 반야사를 중창하라 명하시고 회향법회를 열어 여러 보살님께 공양드리니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홀연히 나타나 영천으로 인도하여 목욕할 것을 권했다.

이윽고 문수보살은 “왕이 불심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 ”는 말을 남기고 사자를 타고 망경대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시다가 홀연히 사라졌는데 왕이 목욕을 마친 후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설화가 유명하다.

사찰 이름을 반야사라 한 것도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다.

 

호랑이 모형의 돌무지가 있는 풍경.
호랑이 모형의 돌무지가 있는 풍경.
반야사 대웅전.대웅전 양쪽에는 두개의 석탑이 있다.
반야사 대웅전.대웅전 양쪽에는 두개의 석탑이 있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永同 般若寺 三層石塔) 보물 제1371호  석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셨다고 여겨진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유행했던 단층 기단형 삼층석탑 양식을 따랐다. 신라 문성왕 8년846에 반야사가 지어지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반야사 북쪽 석천 계곡 안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지대석 위에 1층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탑 몸돌을 올렸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있다. 2층의 탑신은 1층에 비해 눈에 띄게 낮으며, 1층의 지붕돌 받침은 5단인데 2층과 3층은 4단으로 되어있다.  이 석탑의 일부는 새로운 부재로 보충되었지만, 백제와 신라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만든 고려 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노반: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복발: 노반 위에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장식
보물 제1371호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永同 般若寺 三層石塔)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셨다고 여겨진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신라 말과 고려 초에 유행했던 단층 기단형 삼층석탑 양식을 따랐다. 신라 문성왕 8년(846년)에 반야사가 지어지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반야사 북쪽 석천 계곡 안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지대석 위에 1층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탑 몸돌을 올렸으며, 꼭대기에는 노반(露盤: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 )과 복발(覆鉢: 노반 위에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장식 )이 있다. 2층의 탑신은 1층에 비해 눈에 띄게 낮으며, 1층 지붕돌 받침은 5단인데 2층과 3층은 4단으로 되어있다. 이 석탑의 일부는 새로운 부재로 보충되었지만, 백제와 신라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만든 고려 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반야사 배롱나무는 사찰 내 마당 양측에 생립하는 희귀 노거수로 수령이 500년이라고 한다.
반야사 배롱나무는 사찰 내 마당 양측에 생립하는 희귀 노거수로 수령이 500년이라고 한다.
재밌게 찍어 본 사진.카페 창안으로 반야사 전경이 보이고, 카페 안도 들여다 보여서 찍어 봤다.
재밌게 찍어 본 사진(카페 창안으로 반야사 전경이 보이고, 카페 안도 들여다 보여서 찰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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