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살리자 身土不二는 身土不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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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살리자 身土不二는 身土不異다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3.12.2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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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아라 칼럼'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우리의 몸과 우리의 흙은 다른 개체가 아니다. 흙이 오염되면 우리 자신도 분명 오염된 것이다. 흙에서 발을 뗀다고 오염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땅의 흙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생장한 먹거리를 먹고 살다가 다시 이 땅의 흙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니 우리의 몸과 이 땅의 흙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며 당연히 하나인 셈이다.

강원도 산속에서 양봉을 하는 어느 시인의 말이다. 어느 날 이 땅에서 벌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날이 오게 되면, 우리네 삶도 그리 멀리 가지는 못한다는 것.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즘의 벌들은 대부분 병이 들어 항생제를 투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간이 뿌려대는 농약과 대기오염에 견디지 못하고 벌들이 헐떡거린다는 것이다.

벌들이 멸종 되는 날이 과연 올까 싶지만, 양봉업자들이 아니면 그나마 살아남기도 힘들다고 하니, 만약에 이 벌들이 정말로 사라지게 되면 우리의 윤택한 삶도 풍전등화가 되지는 아니할까 걱정이 된다. 산속의 오지에서 양봉하는 사람들의 수고가 오늘 문득 신성해 보인다.

어느 누구도 하찮은 벌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벌이 없으면 바람이 있지. 바람도 없으면 나비라도 있지. 벌이야 사라진들 어떠리. 벌 하나 멸종된다고 설마 우리의 삶이 무너지랴. 몰래 꿀만 빼먹는 인간의 짧은 소견이다.

흙이란 흙은 모조리 콘크리트와 아스콘, 빌딩과 도시건물로 뒤덮여 가고 있다. 산과 들은 온통 농약과 구충제로 범벅되어 가고 있다. 흙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지경이고, 그러다 보니 흙에서 자라야할 초목들이 차츰 생기를 잃고 있다. 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 있는 것이다. 전국이 도시화 되어가는 와중에서 어린 세대들마저 자연 친화적인 학습과 체험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직접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피부로 느끼는 일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이제 서서히 남의 세계가 되어가고 있다.

다수확과 대량생산만이 능사는 아니다. 기계화와 과학적인 영농만이 살길은 아니다. 흙에 온갖 수모를 안기고도 흙이 우리를 위해 영원히 먹을 것을 주리라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 인간 중심의 이기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삶의 종점을 향해 치달리는 자살행위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흙에 투입된 오염물질들은 천천히 강으로 유입되어 다시 바다로 흐르고, 바다의 청정활동이 한계에 이르게 되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인간의 정신세계는 하늘 모르고 고공 상승 중이고, 문명의 발전 역시 첨단화 되어 제동이 없는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인간의 정신이나 문명의 발전이 마치 인류 발전의 꽃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이 시대, 오염되어 황폐화가 진행되는 자연 환경이 자칫하여 인류 멸망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흙을 살리자.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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