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1월 13일] 임진왜란 권율 장군 '수원 독성산성 전투' 승리...이어 행주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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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 1월 13일] 임진왜란 권율 장군 '수원 독성산성 전투' 승리...이어 행주대첩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0.01.13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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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독산성(禿山城)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

독성산성.
독성산성.

곽이다. 독산성은 독성산성으로도 불린다.

1593년 오늘, 독성산성 전투에서 권율 장군은 경기도 지역의 일본군을 궤멸시키고 이어 임진왜란 3대 대첩중의 하나인 행주대첩까지 승리를 이룬다.

치열한 공방

1592년(선조 25) 일본이 조선을 침략, 1598년(선조 31)까지 7년간 이어진 전쟁 ‘임진왜란’ 초기.

조선군 5만여명은 용인 전투에서 1600여명의 왜군에게 패배했다.

1970년 장우성이 그린 권율 영정.
1970년 장우성이 그린 권율 영정.

이 전투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았던 권율은 휘하 장수 선거이, 소모사 변이중, 조방장 조경, 의병장 임희진과 변사정, 승병장 처영과 1만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오산 독성산성으로 들어갔다.

앞서 권율 장군은 일본의 전라도 진격작전을 크게 저지한 이치 전투에서 승리하고 북상했다.

당시 한양에는 6만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한양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이자 제8진 우키타 히데이에는 권율이 독성산성에 있으면 한양의 후방 연락망과 보급 추진로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우키타 히데이는 2만 명의 군사로 수원에서 오산, 관천, 용인 등지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하고 독성산성 공격을 개시했다.

조선군은 공격을 받자 소수 병력을 타격조로 편성, 운용하고 수시로 야습을 감행함으로써 일본군을 교란했다.

독성산성의 약점이 물 부족인 것을 알게된 일본군은 성 안으로 가는 물줄기를 막아 독성산성을 고립시키려 했다.

그러나 조선군이 제방을 막고 있던 일본군을 야간에 기습하여 단수를 차단했다. 그리고 전라도 도사 최철견이 의병을 모집해 권율을 구원하기 위해 오자 일본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산성에서 철수했다.

전투 일화

독성산성 둘레는 3,24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식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된 왜군은 장기전을 펼치려 하였지만 권율장군은 적이 보는 앞에서 말을 씻기며 왜군을 조롱했다.

이를 본 왜군은 식수가 충분하다는 오인을 하여 퇴각을 한다. 이때 말을 씻긴 것은 물이 아니라 ‘쌀’이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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