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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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7월 15일
  • 장석호 인턴기자
  • 승인 2019.07.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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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 인턴기자] 7월 1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89번째 날에 해당한다.


[사건]

2013년 -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 발생 7명 사망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암사정수센터에서 노량진 배수지로 공급하는 송수관 중 올림픽대로에서 노량대교 교각 하부구간의 취약구간에 안정적인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하 40m에 직경 1.5m의 대형 상수도관을 부설하고 있었다. 공사비는 180억원 규모로 2011년 9월 시작돼 2014년 4월 완공될 예정이였다. 사고는 계속된 폭우로 한강물이 불어나면서 발생했다. 공사구간 중 한강둔치 쪽에 뚫려 있는 길이 9m·너비 12m 대형 구멍으로 직경 2.2m 공사현장 터널에 한강물이 범람해 들어와 빚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7명이 작업하던 터널은 강물의 범람에 대비해 차단막이 설치돼 있었지만 밀려드는 강물의 압력에 차단막이 터진 것이다. 터진 차단막을 통해 강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터널에서 작업하던 7명은 순식간에 물에 휩쓸렸다.

2014년 -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 아르바트스코 파크롭스카야 노선 전동차 탈선 사고 발생 5명 사망 120여명 부상 

지하철 노선도

모스크바 지하철은 모스크바 지하철 공사에서 운영하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지하철이다. 1935년 5월 15일에 개통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의 첫 번째 지하철이다. 모스크바 지하철의 길이는 총 447 km에 달하며, 15개 노선에 265개 역을 가지고 있다. 지하철은 오전 5시 30분에 개장, 다음날 오전 1시까지 영업한다. 열차 간 간격은 보통 약 2분 간격이나 출퇴근 시간에는 90초마다 한 대꼴로 오기도 한다. 일일 이용자는 평균 2,442만에 달하며 모스크바의 대중교통 중 가장 높은 이용률을 자랑한다. 주중에는 700만을 초과할 때도 있으며, 주말에는 그보다 낮아진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전 세계에서 도쿄 지하철 다음으로 가장 이용객이 많은 지하철이다.

2014년 - 박근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출범

통일준비위원회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직속 합의체로, 박근혜 정부 측 위원장과 민간 위원의 협의체로 활동했다.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통일부 장관이 부위원장, 1인 민간 부위원장을 뒀었다. 2014년 7월 15일 출범하였으나, 문재인 정부 임기 초기인 2017년 6월 1일 폐지되었다.


[문화]

1799년 - 로제타석 발견. 고대 이집트 상형 문자 해독 열쇠가 제공

로제타석의 탁본

로제타석(Rosetta石) 또는 로제타 돌은 기원전 196년에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된 같은 내용의 글이 이집트 상형문자, 이집트 민중문자, 고대 그리스어 등 세 가지 문자로 번역되어 쓰여 있는 화강암이다. 이 돌이 있어서 장프랑수아 샹폴리옹과 토머스 영은 잘 알려진 그리스어를 바탕으로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다.

1955년 - 국립서울현충원 설립

1982년 - 잠실 야구장 개장

1997년 - 울산, 광역시로 승격

2006년 - 세계에서 가장 큰 소셜 미디어 플랫폼 중 하나인 트위터 시작

[인물]

1606년 -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출생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렘브란트는 1606년 7월 15일 암스테르담 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레이던에서 방아간 주인의 아홉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이고 렘브란트는 개신교 신자였다. 렘브란트는 화가가 되었을 때에 모친이 성서를 읽는 모습을 그림에 담아냄으로써 신심이 진지한 모친에 대한 존경을 보였다. 라틴어를 가르치던 학교를 나온 후, 렘브란트는 14세에 레이던 대학교에 입학 하였다. 렘브란트가 학교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림 그리는 일에만 열중하자, 그의 부모는 야코프 판 스바넨뷔르흐 밑에서 3년간 미술 수업을 받게 하였다.

1625년 스승의지도를 받으면서 미술에 관한 시야를 넓혔으며, 이를 계기로 1632년 거처를 암스테르담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 외과 의사 조합의 주문으로 〈튈프 박사의 해부〉를 제작하여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1642년 '야경'을 제작하였으나 당시에는 극히 나쁜 평을 받아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잃었다. 게다가 같은 해에 아내마저 죽자, 실망과 곤궁에 빠지게 되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작품에 정열을 기울였다. 1656년 파산 선고로 유대인 지구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였다. 끼니마저 거르는 만년의 비참한 삶에서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그림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야경〉제작 이후 무너진 그의 화가로서의 삶은 끝끝내 회복되지 못했고 1669년 암스테르담에서 쓸쓸히 죽었다.

1857년 - 오스트리아 음악가 카를 체르니 사망

카를 체르니

카를 체르니(1791년 2월 21일 ~ 1857년 7월 15일)는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작곡가이다. 그의 이름을 딴 피아노 교본으로 유명하다.

빈에서 태어난 후 처음에 보헤미아(체코) 출신인 아버지로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곧 두각을 나타내어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제자가 되었다. 1800년 첫 연주회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고, 1812년 베토벤의 황제 협주곡을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그 후로는 주로 피아노 연주자보다는 피아노 교사로 이름을 알렸으며, 프란츠 리스트도 그의 유명한 제자 중 하나이다. 작곡가로는 1000개에 달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 분야도 매우 다양하나, 주로 피아노곡이 알려져 있다. 연습곡이 특히 유명한데, 그 중에서 작품번호 139번, 849번, 299번, 740번은 대한민국에서 각각 체르니 100번·30번·40번·50번으로 알려진 것으로 대한민국에서는 피아노 학습에서 필수적인 곡으로 여겨지고 있다. (체르니 60권·70권·110번·160권도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르간을 위한 작품과 9개의 교향곡, 협주곡 등도 남겼으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많은 종교 음악도 남겼으나, 이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출처:한국어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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