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권의 아라칼럼]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상태바
[장종권의 아라칼럼]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5.11.25 1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최신 고급 대형버스가 질주한다. 고속도로든 지방도로든 가리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이내 지방도로로 나서고 지방도로를 달리다가도 여차 하면 시골길을 달리기도 한다. 최신 버스이므로 당장은 탑승객들은 안전하다. 스릴 만점이다. 이 버스를 아무도 막지 못한다. 막아설 이유도 별로 없다. 이유란 쓰잘 데 없는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버스를 발견하는 순간 모든 구식 차량들은 일제히 갓길로 피해야 한다. 충돌하면 도무지 이겨낼 수가 없으니까. 언제, 어디에서 이 버스를 만날지 그저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풍문으로만 듣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일단 만나면 거의 살아남을 수가 없으므로.

 이 버스의 목적지는 도대체 어디일까. 아무도 모른다. 탑승객들조차 모른다.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언제 종점에 도착할 것인지, 그런 건 애당초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신나게 달리는 것이 좋다. 이 버스에 탑승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명예롭다. 자손 대대로 길이길이 남을 일이다. 달리는 도중에는 아무도 더 이상 탑승시키지 않는다. 달리는 도중에 서는 일도 없다. 무조건 끝까지 달리는 것이 이 버스의 숙명이다. 병이 든 탑승자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던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병이 들 리도 거의 없다. 탑승객이라는 영광스러운 기쁨은 면역 체계의 최강자다.

 허름한 소형버스가 이 최신버스를 따라간다. 대형버스가 앞서가므로 장애물은 없다. 대형버스가 어디로 가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냥 따라만 가도 자랑스럽다. 대형버스의 탑승객은 아니지만 마치 대형버스에 탑승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마냥 행복하다. 한 가지 불안은 낡은 중고버스라서 언제 갑자기 서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쾌속 최신 대형버스를 놓치게 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고장이 나서는 안 된다. 앞서가는 대형버스가 서는 일이 없으므로 소형버스도 당연히 서는 일이 없다.

 소형버스 탑승객들은 더욱이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다. 대형버스를 따라가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앞서가는 대형버스가 안내하는 목적지야말로 이상향이라고 믿는다. 앞서가는 대형버스에 목적지가 분명히 있으리라고 믿는다. 설령 없다고 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목적지란 없는 것이므로. 대형버스는 뒤따라오는 소형버스를 신경 쓰지 않는다. 뒤는 적절할 만큼 소형버스로 하여 안전할 수도 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 그림이 정말 실제의 풍경이라면 그 땅은 아비규환이겠다. 그 버스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은 절망스럽겠다. 이 버스들이 절대로 나타날 수 없는 땅으로 도망이라도 가겠다. 도망을 못가면 이 버스들이 다닐만한 길목마다에 못이라도 뿌리겠다. 이 특별한 버스들의 굉음에 잠 못 이루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새벽이 허리를 꺾겠다. 고요하고 평화스러운 고향마을은 언제 돌아올까. 따뜻하고 장엄한 아침해는 언제 다시 뜰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중얼거리며 또 한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