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봉 인천시 보건정책과장, 인천의 꿈 실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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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봉 인천시 보건정책과장, 인천의 꿈 실현상' 수상
  • 이영수 기자
  • 승인 2015.10.01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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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청정지역은 성숙한 인천시민이 만든 것"

 “메르스 환자가 처음 발생한 순간부터 종식 선언이 발표될 때까지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지낸 것 같습니다” 인천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부터 청정지역으로 남게 하는데 일등공신으로 주목받은 심재봉 인천시 보건정책과장은 메르스 사태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심 과장과 나눈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다.

 지난 5월20일. 메르스 환자가 첫 번째로 발생했을 당시만 해도 대다수 국민들은 메르스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단순한 중동지역 독감으로 치부하기엔 무엇인가 석연치 않았다. 메르스 백신도 없는데다 뚜렷한 치료방법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기도에서 메르스 확진환자가 발생하자 마자 곧바로 24시간 가동 비상대책반을 꾸렸다. 인천의료원을 비롯해 인하대병원 등 인천지역 대형병원과 비상체제를 만들고 각 보건소에 메르스의 심각성을 알렸다. 공식적이지는 않았지만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대책을 강구해 나갔다.

 ‘만(萬)의 하나’라는 가정아래 위기 상황을 미리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경기도에서 발생한 메르스 환자가 서울은 물론이고 인천 인접 지역까지 뚫리면서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결국 메르스 대책반을 행정부시장을 중심으로 한 메르스 대책본부로 격상하고 밤샘 근무에 들어갔다.

 신문과 방송은 매일 중계방송 하듯 메르스 환자 수와 발생지역 등을 생생히 전달했다. 그럴 때마다 인천시 공무원으로서 제발 인천만이라도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의심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현장으로 달려갔다. 메르스 감염은 전혀 겁나지 않았다. 단지 메르스 확산만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러나 메르스 환자는 늘어나고 있었다. 이 즈음에도 인천에는 메르스 환자가 나오지 않았다. 다만, 타 지역에서 이송해 온 환자 1명이 우려되기도 했지만 철저한 격리조치로 2차 감염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검단의 한 병원에 있는 간호사가 1차 조사에서 메르스 양성으로 나왔다. 심장이 터져 밖으로 나오는 듯했다. 아! 짧은 탄성과 함께 다리가 풀렸다. 부랴부랴 병원 현장에 달려가 제2차, 제3차 검사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동행했던 인하대 병원 의사와 눈 빛을 교환하며 말 없이 악수했다. 가슴엔 안도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을 조이는 일이 매일 이어졌다. 의심환자만 나와도 가슴이 철커덕 내려앉곤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지냈다. 결국 7월28일. 메르스 종식이 선언됐다. 69일간 동안 메르스 방어에 심혈을 기울여 왔던 긴 시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자장면과 군만두를 먹지 못한다. 밤샘 근무에 허기진 배를 자장면으로 때우며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메르스 청정지역으로 인정받은 인천. 이 일로 동료들은 대통령 표창 등 큰 상을 받았다. 까짓 자장면 못먹으면 어때...동료들이 큰 상을 받았는데 하며 자장면 못먹는 나를 위로했다.

 “인천이 메르스 청정지역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성숙하고 높아진 시민의식 때문이었어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은 보이는 적과 싸움 보다 무섭지요. 메르스가 그랬어요. 그걸 인천시민들이 이겨낸 거지요”라며 씨익 웃는 그의 모습에서 건강한 인천의 모습이 겹쳐졌다.
심 과장은 메르스 청정지역을 유지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인천시가 수여하는 ‘인천의 꿈 실현상’을 받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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