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칼럼> 소크라테스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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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칼럼> 소크라테스의 저주
  • 이상윤 칼럼
  • 승인 2015.07.07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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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정치 수준이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상윤 에스와이에셋 대표
 <오이디푸스>, <아가멤논>, <안티고네>, <메데이아>, <오레스테스> 등등.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비극은 지금도 널리 회자(膾炙)되는 고전 중 고전이다. 주옥(珠玉)같다는 표현으로도 매우 부족한 작품들이다. 인류 최고의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다듬은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은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의 운명이 신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운명결정론’이 그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은 성경과 다름없다.

 소크라테스는 사형 선고를 받고 나서 유죄라고 평결한 배심원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여러분은 내가 죽은 후에 곧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는 제우스에게 맹세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이 나를 사형에 처한 것보다 훨씬 더 견디기 어려운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류 문명의 최고 발상지인 그리스는 독립국으로 지낸 적이 별로 없었다. 로마의 오랜 식민지를 거쳐 중세에도 주변 강대국의 속국으로 살았고 현대에 와서도 재정적으로는 EU에 종속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치명적인 위기 앞에서도 그리스 국민들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들 의식 속에는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새롭게 혁신하자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나라를 회원국으로 계속 품을 수밖에 없는 EU의 입장도 딱할 수밖에.

 그리스 사태를 계기로 유럽의 소위 PI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의 현재 상태가 궁금해졌다. 먼저 아일랜드는 지난해 유로존 최고인 4.8% 성장으로 엄청난 반전을 이뤄냈다. 1년 새 국가 신용등급이 세 차례나 올랐을 정도다. 2010년 구제금융 이후 공무원 임금 삭감, 세금감면, 규제개혁 등이 낳은 성과다. 2008년 이후 재정지출을 280억 유로나 줄였고 유럽 최저인 법인세로 구글 같은 다국적 기업 투자도 대거 유치했다.

 스페인도 경직됐던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면서 구조개혁 모범사례란 평을 듣는다. 경제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95%까지 회복됐고 올해 3.1% 성장을 예상한다. 블룸버그는 "구조조정의 고통을 고루 나눠 성장률을 끌어 올렸다"고 평가했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스페인을 '돌아온 별'이라고 치켜세울 정도란다. 재정긴축과 구조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간 나라들도 있다. 이탈리아는 구제금융을 받지 않은 대신 구조개혁도 미진해 경기침체로 고전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산업과 정치면에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두 나라는 특별한 산업 없이 관광과 수공예 산업에 의지하는 후진적인 구조를 유지했다. 또한 2000년대 초, 호황 때 불균형을 바로 잡았어야 했으나 개혁이 미진해 기회를 놓쳤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리스는 세계최고 해운업 국가인데도 정작 조선업은 없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올리브 생산 국가이면서도 그걸 가공할 기반이 없어 올리브 열매를 수출해서 가공 올리브를 수입하는 기형적인 구조"라며 "결국은 제조업이 자본주의의 꽃인데 이걸 너무 소홀히 하다 보니 나라 경제가 정상으로 굴러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디폴트에 관한 한 그리스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이후 그리스는 이번까지 총 다섯 번의 디폴트를 경험했다. 직전의 디폴트는 대공황 때인 1932년이었다. 또 2010~2011년 그리스 디폴트 위기 당시 국제사회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리스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것도 그리스 국민들은 알고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그리스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간 큰' 채무자가 됐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은 "IMF나 ECB가 그리스에 대해서는 서구 문명의 발상지라 봐주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유로존 단일 통화로 묶인 상태에서는 성장을 일으킬 수 없는 만큼, 그리스로서는 유로 존에서 탈퇴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결코 나쁜 선택인 것만도 아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중국의 확장정책에 대항해 미국이 적극 그리스를 옹호하고 있으나 말뿐인 상황이다. 자국의 운명을 타국의 이해관계에 내맡겨둔 국가의 미래가 어떠했는지는 다른 나라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숱한 교육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가 그러했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과 국가의 운명은 한 치도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스스로 자립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미래를 개척할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며,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다. “인생은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 타기와 같다”고 고(故) 정주영 회장이 말했다.

 세계경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중국 증시 거품 붕괴가 그리스의 국가부도보다 세계경제에 미칠 충격이 훨씬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발 경제 불확실성으로 세계경제가 요동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출 감소와 메르스•그리스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권과 정부, 기업과 개인 모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그러나 삶의 궁극적 책임은 개인 각자에게 있으므로 개인 스스로가 가장 경계하고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믿는다.

 ‘찬홈’, ‘린파’, ‘낭카’ 같은 대형 태풍은 몰려오는 게 뚜렷이 보인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및 금융태풍이 훨씬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생계가 어려워질 때에야 비로소 허둥지둥 하게 되면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철저히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피해를 줄이고 재기할 수 있는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절약하고 소득을 늘리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실직자들은 ‘알바’를 해가면서라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워밍업을 해야 함은 물론이다.

 <생각의 융합> 저자 김경집 교수는 "시민의 정치 수준이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 한다" 고 했다. 그리스와 한국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라와 개인의 운명은 곧 정부와 국민의 구조개혁 의지가 가른다. 땀과 눈물의 고통 없이는 위기 극복도 불가능하다. 고통분담 대신 내 몫 챙기기와 기득권 고수에 더 골몰한 국가와 개인의 말로는 그리스 보다 더 비참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이상윤
 인천출신, (주)삼성전자 계열사 컨설팅, (주)이랜드개발 컨설팅, (주)대명리조트 컨설팅, 인천대 창업보육센터 컨설팅, 중소기업진흥공단 자문위원, 인천경제통상진흥원 컨설턴트, 그외 인천 소재 다수의 중소업체와 법무업인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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