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처럼 지고, 꽃처럼 시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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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처럼 지고, 꽃처럼 시든다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5.06.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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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아라 칼럼'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해는 반드시 진다. 아침에 떠오를 때에는 마냥 빛나고, 하루종일 뜨거웠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서늘한 바다로 가라앉고 만다. 오늘 가라앉은 해가 내일 다시 떠오를 때에는 이미 어제의 해가 아니다. 내일은 전혀 다른 새로운 해가 떠오르게 되어 있다. 그 해가 내일 떴다가 가라앉고, 그 다음날에는 또 다른 해가 솟아오르게 될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꽃도 피었다가 반드시 진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은 무궁한 꽃이 없어 나온 안타까움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피기 전의 신성한 아름다움에서부터 완전히 피었을 때의 황홀한 모습은 살아있는 존재들의 신앙이 되었지만, 그래도 꽃은 가뭇없이 진다. 질 때의 허망함이나 지고난 후의 황폐한 모습은 바라보기조차 싫어지게 된다. 내년에 꽃은 다시 핀다지만 내년에 피는 꽃은 이미 올해의 꽃이 아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해는 두 개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혼자 높은 곳에 떠서 강력하게 지상을 지배한다. 달은 밤의 세계로 쫓아내 버렸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캄캄한 밤에나 힘없이 떠서 외롭게 놀다 가도록 내버려둔 것이 그나마의 적선이다. 꽃도 꽃끼리 화합하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모든 꽃들이 사이좋게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저마다 자신이 가장 예쁘고자 자신의 얼굴만을 가꾸기에 여념이 없다. 왜냐하면 저도 반드시 한 시절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다음 시절도 보장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하루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에 모든 것을 투자하듯이, 그리고 한 시절의 꽃 역시 피었다가 지는 동안에 모든 것을 쏟아 붓듯이, 사람도 한 번 태어나 죽을 때까지 모든 힘을 쏟아 붓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니 해처럼 뜨거워야하고, 강력해야하고, 지배적이어야 하는 것이며, 꽃처럼 오로지 자신에게로만 모든 시선을 끌어당겨야 하는 것이리라. 산 것들에게서 이런 욕망을 빼앗아 버린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권력욕이 없는 자 이 땅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구보다 더 강력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닐까. 이는 생명체의 본능이다. 누구는 노력한 것보다 더 손쉽게 권력을 잡을 수도 있고, 누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에 합당한 권력을 잡을 수 없는 일도 세상에는 많다. 그것도 생명체의 한계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더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산다. 더 행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일한다. 남보다 더 나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피나는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도록 우리는 만들어져 있으며, 교육과 훈련도 받고 있는 중이다.

 예술이건, 삶이건, 정치건, 또는 우리가 살아내야 할 그 무엇이건, 궁극적으로는 권력을 향한 필사적인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 권력에 삶의 의미가 있고, 행복의 깊이가 있고, 내일의 희망이 있다. 꿈을 그곳에서 그렇게 꾸게 되어 있다. 다만, 해처럼 반드시 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꽃처럼 반드시 시들게 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해처럼 질 때에는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도 아무도 건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꽃처럼 시들 때에도 아무도 바라보아 주거나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저 해처럼 지고, 꽃처럼 시든다. 그것이 생명체의, 인간의, 비극적 운명이고 말로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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