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의 분투(奮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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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의 분투(奮鬪)
  • 이상윤 칼럼
  • 승인 2015.05.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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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불운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난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일화

이상윤 에스와이에셋 대표
 이 사장과는 기이한 인연이었다. 재작년 이맘때, 인천 남동공단에서 통신기기를 제작 및 납품하는 김 사장이 공장을 낙찰받기 위해 내게 조언을 구했다. 마침 공단입구에 토지가 천 평에 달하는 공장이 매물로 나왔다. 가격도 쌌고 법적인 문제도 있었다. 다른 사람은 입찰할 수 없는 물건이라 판단해 과감히 뛰어들었다. 잔금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을 때였다.  

 김 사장의 사무실로 중년 남자 서넛이 방문했다. 그중 한 사람은 비쩍 마르고 눈빛이 날카로운데다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었다. 충청도 말투를 진하게 쓰면서 사장님 계신 겨?” 라고 직원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는 직원 말에 알 바 없다며, 사장실을 발로 꽝 차고 들어섰다. 안에 있던 김 사장과 직원들이 아연실색했다. 이 사장은 몸을 휙 날려 책상 위로 올라섰고, 짧고 강한 발차기로 김 사장의 얼굴과 배를 사정없이 휘갈겨댔다.
 
 다들 기겁(氣怯) 했다. 직원들은 경찰 불러라! 저 인간 쫓아내라!’ 며 고함만 질렀을 뿐 감히 덤비지는 못했다. 김 사장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이 정도면 교도소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고 판단했다. 인생 경륜으로 대화를 유도했다. 이 사장이 자초지종을 말하면서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당신은 같은 공단에 있는 제조업 사장이다. 뻔히 힘든 상태인 줄 아는 같은 지역의 공장이 경매로 나왔으면 최소한 예의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이 물건을 사면 어떻게 해드리면 좋겠습니까?’ 라고 말이다. 내가 이 공장에 들인 돈이 얼 만줄 아나? 그리고 내가 낙찰 받으려고 법적인 하자도 만들어놨는데, 네가 공짜로 먹으려 들어, 이 새끼야!”
 
 김 사장은 나도 같은 상황이면 이럴 수 있었겠다며 오히려 달랬다. 김 사장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내게 물었다. 나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무슨 소리냐, 이건 좋은 기회다. 폭력을 휘둘렀으니 사건 해결이 더 쉬워진다. 과감하게 밀고 나가라." 라며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런데 사업을 오래 한 분들은 대개 징크스가 있다. '남을 악하게 대하면 자신도 보복을 받는다!'는 신념을 지닌 분들이 꽤 많았다. 김 사장은 어머님으로부터 포기하라라는 말씀을 들었다면서 어쩔 수 없이 돌려줘야겠다고 주장했다.
 
 아시다시피 경매는 낙찰 받은 물건을 그냥 돌려줄 순 없다. 보증금을 포기하면 재경매가 시작되고 다시 입찰에 임해 낙찰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하지만 이 사장은 입찰보증금도 없었다. 이 사장은 계획적으로 낙찰자에게 시비를 걸려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사장의 서슬 퍼런 협박에 못 이겨 김 사장 명의로 잔금을 치르고 대출까지 받았다 (시설 및 운영자금까지 융자를 받았으므로 잔금보다 훨씬 많았다). 들어간 비용과 일부 수수료만 제외한 채 이 사장 법인 명의로 넘겼다. ‘죽 쒀 개 준정도가 아니라, ‘잘 만든 상감청자를 포장도 뜯지 않고 갖다 바친격이 돼버렸다. 이 사장은 그 공장을 지인에게 20억 원 이상 웃돈받고 넘겼다. 그 차익으로 아파트를 지었다. 원래 건축과 제조업을 병행했으므로 요사이 유망한 건축업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나는 중재 차 이 사장을 여러 번 만났다. 서로 불꽃이 튀고 여차하면 치고받을 뻔 한 적도 있었다. 이 사장은 전쟁터에서 살아온 사람답게 머리회전이 무척 빨랐고, 정부 고위층들과 네트워크도 잘 갖춰져 있었다. 공권력으로도 제압하기 힘든 상대였다. 병법서에 보면, ‘강한 적은 오히려 친구로 만들라는 구절(句節)이 있다. 이 사장과 나는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과거를 털어놓고 얘기하는 사이 친구가 됐다.
 
 이 사장은 아마추어 마라톤 동호회 회원이었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 십 킬로미터 이상 달렸다. 두 달에 한번 하프마라톤 코스 이상의 대회에 참석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집에서 러닝머신으로 대신했고, 근력을 키우기 위해 집에 쌀이 떨어져도 고기를 사 먹었다. 그렇게 다져진 체력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폭력도 불사한 것이다.
 
 이 사장은 에쿠스 초기모델을 끌고 다녔다. 20대 초반 운전사를 고용했는데, 급여를 육 개월 정도 안 준 상태였다. 운전사는 예전에도 자주 그런 적이 있었어요. 언젠가는 주시겠죠. 힘드실 때 떠날 수는 없잖아요" 라고 담담히 대답했다.
 
 이 사장은 무슨 일에든 필요하다면 그 누구도 활용했다. 돈이 떨어지면 빌려달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돈이 생길 때 꼭 갚았다. 변호사를 선임할 때조차 대부분 외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전 신용만 믿고 소송을 맡았다.
 
 좌충우돌(左衝右突) 하는 사이 경기가 나아졌고, 신축 중인 아파트 분양이 잘 풀렸다. 제조업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현재는 수출판로도 개척하여 매출을 계속 키워 나가고 있단다.
 
 이 사장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업은 전쟁이다. 목숨 건 전쟁을 하면서 세상 눈치 만 보고 법 만 준수한다고 제대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사무치도록 느꼈다. ‘거지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고 싶다는 말처럼, 이제는 사회에 베풀며 살고 싶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실패를 자주 겪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실패에 강한 인간이 결국 성공하게 된다!'는 말은 인류가 출현한 이래 최고의 진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 이상윤
 인천출신, (주)삼성전자 계열사 컨설팅, (주)이랜드개발 컨설팅, (주)대명리조트 컨설팅, 인천대 창업보육센터 컨설팅, 중소기업진흥공단 자문위원, 인천경제통상진흥원 컨설턴트, 그외 인천 소재 다수의 중소업체와 법무업인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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