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장은 미처 말도 끝내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경수가 속한 팀은 합병으로 공중분해 됐다. 직급이 낮은 경수부터 정리가 이뤄졌다. 지방대를 졸업해 공채(公採)로 당당히 합격한 경수에게는 이 회사가 무척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남들이 술 마시고 놀러 다닐 때 업무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비로 학원도 다녔다. 또 야근은 도맡아 했다. 십년 근속상과 우수사원상도 받았다. 팀장들은 성실하고 유능한 경수를 데려가기 위해 경쟁했다. 그럼에도 명퇴당한 것이다.

 

 경수는 줄담배를 펴댔다.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새벽에도 인터넷에서 장사를 추천하는 정보와 사이트를 헤맸다. 보다 못한 집사람이 물었다.

 “당신 요즘 무슨 고민 있어? 왜 이렇게 잠을 못자. 직장에서 안 좋은 일 있었어?”

 “아니야, 그냥 앞으로 계속 직장을 다녀야 할까, 아니면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일을 해볼까, 고민 중이야.”

 

 다음날부터 경수는 지인들을 만나 전문가를 소개받았다. 사무실과 가게를 찾아다니며 미팅기회를 잡기 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대부분 무시하거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미팅을 거절했다. 직장에서는 겪을 수 없었던 모욕이었다. 진정한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학원 강사의 소개로 돈까스 체인점에 취직했다. 기술이 없어 거의 무료봉사였다. 시급이 오천 원도 안 돼, 한달 꼬박 나갔지만 150만원도 받을 수 없었다. 교통비와 식비를 제외하면 손에 쥐는 건 100만원 안팎이었다. 그래도 경수는 기뻤다. 그냥 배워도 감지덕지한데 월급까지 받는다고 생각하니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일 년간, 명절 하루만 빼고 모두 일했다. 평생 이렇게 처절할 정도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장사하는 사람 대부분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들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동안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았구나’ 라는 반성과 ‘이 힘든 경쟁을 뚫고 승리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교차했다.

 

 손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수는 음식을 만들고 새로운 디자인을 입히는 일이 갈수록 재미있어졌다. 저녁마다 새로운 트렌드를 익히고 학생들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신기술을 많이 습득한 덕분이었다. 학원에서 경진대회를 열면 언제나 일등을 도맡아 했다. 낮에 배운 기술을 밤에 마음껏 펼칠 수 있어서였다. 모든 일은 잘하면 재밌다. 재밌으면 더 잘하게 되는 선순환이 생긴다. 이래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에 전념하라는 지혜가 생겼나 보다.

 

 일 년간 성실과 끈기, 공부로 다져진 내공을 밑천삼아 조그만 돈까스 전문점을 오픈했다. 가족을 너무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이 컸다. 이에 명품 돈까스 전문점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결의로 가득 찼다. 서빙은 고생을 많이 해본 아줌마로 뽑았다. 힘든 게 뭔지 아는 사람만이 주인정신으로 가게를 살려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전단지도 돌리고 사은행사도 정기적으로 했다. 가장 중요한 음식 맛을 살리기 위해 영업이 끝난 후에도 도서관이나 학원 특강에 꼬박꼬박 참석했다. 가끔은 여러 사람 앞에서 성공담을 발표하는 사장님이 되기도 했다.

 

 “한 분야를 깊이 팔수만 있으면 그 분야가 어떤지를 떠나 먹고살 정도는 됩니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마시고 현재 하시는 일을 재미있고 끝까지 해내겠다는 정신만 가지십시오. 인생은 생각보다 비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할 때가 더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