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불쌍한 개인들의 몫이어서 더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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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불쌍한 개인들의 몫이어서 더 불쌍하다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5.05.04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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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아라 칼럼'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산다는 게 그렇다. 어떻게 옳게만 살 수 있겠는가.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적당히 욕심도 챙기고, 적당히 죄를 섞어 지으면서, 아슬아슬한 인생을 벼랑길 걷듯이 살다가 간다. 어쩌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나 이외의 존재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없으면 더 좋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남에게 철저하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닐 바에는 없어도 무관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아예 안 하고 사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남모르게 나만을 위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사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게 선과 정도의 길만을 걷도록 스스로 명령하고 따르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어차피 우리는 살아야 한다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것이 지중하고 지급한 숙명적인 생명체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거짓말을 하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고, 적당히 욕심을 챙기면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은 분명 사회적 존재이다. 나 혼자만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고, 남들과 더불어 협조하면서 살아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고, 더 행복한 인생을 살다가 갈 수도 있다. 그것이 질서나 규약이나 법이라는 사회적 약속으로 인간을 어느 정도 통제해 온 것이 이미 오래이다. 만약에 개인적 삶이 아니라 사회적 삶의 단계로 자신의 위치가 이동되어 있다면, 다시 말해 공적인 위치에 자신이 서게 된다면, 이때부터는 당연히 개인적 욕망보다는 사회적 약속에 충실해야 옳다.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고, 욕심을 챙겨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사회를 약속대로 정직하게 끌어가야 하니까.

 거짓말을 하는 공인들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 개인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욕심을 챙긴 공인들 역시 당연히 그 자리에서 내려와 개인의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백 번 옳다. 그래도 이 옳은 논리대로 될 리가 없다. 아직까지 그런 적이 별로 없으니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짓말을 하고도 그 자리에 남아 이 사회를 끌어갈 것이고, 욕심을 챙기고도 반성하는 일 없이 그 자리에 남아 이 사회를 끌어갈 것이다. 그런 사회의 미래가 어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잘못된 인물들이 끌어가는 사회, 욕망은 본능이므로 특별히 죄가 될 수 없다는 사람들이 끌어가는 사회, 그 사회가 풍요로운 세계로 갈 수나 있겠는가. 그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로 발전할 수나 있겠는가. 꿈이다.

 어쩌랴. 사회도 개인과 똑같은 인격체인 것을. 사회도 개인처럼 거짓말을 하고, 욕심을 챙기고, 서로 싸우고 뺏고 해치는 것을. 인류 역사에 흠 하나 없는 사회가 있었던가. 완벽하고 이상적인 사회가 있었던가. 그런 사회로 끌어가려고 진정 애썼던 인물들이 과연 몇이나 있었던가. 그러니 우리 미래에 대해 희망을 말하지 말라. 우리 미래에 대해 행복과 풍요를 말하지 말라. 거짓말이다. 책임질 수도 없고, 이루어낼 수도 없는 일종의 기만이고 사기이다. 우리들의 미래는 불쌍한 우리 개인들의 몫이어서 언제나 더 불쌍하다.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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