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 자신인가. 아니면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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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 자신인가. 아니면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5.01.05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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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아라 칼럼'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오동꽃 저 혼자 피었다가
 오동꽃 저 혼자 지는 마을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버려진 옛집 마당에 서서
 새삼스레 바라보는
 아득한 조상들의 뒷동산

 어릴 적 어머니의 젖무덤 같은
 봉분 두 개
 봉긋이 솟아 있다

 저 아늑한 골짜기에 파묻혀
 한나절 뒹굴다가
 연한 뽕잎 배불리 먹은 누에처럼
 둥그렇게 몸 구부려
 사르르 잠들고 싶다                                                - 이가림 시인의 시 「둥그런 잠」

 비는 비대로 저 혼자 내렸다가 멎는다. 눈은 눈대로 저 혼자 쏟아졌다가 멈춘다. 바람은 바람대로 저 혼자 불다가 사라진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저 비도, 저 눈도, 저 바람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세상은 부지런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그 세상도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혼자 돌아가는 셈이다. 저 비와, 저 눈과, 저 바람과, 그리고 저 세상과 나와는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오동꽃이 저 혼자 피었다가 저 혼자 지는 마을에서, 고향과 어머니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가는 노 시인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부질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모두가 도시로 떠난 시골 옛집 빈 마당에 서면, 소리 역시 모조리 도시로 떠나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고요뿐이다. 모든 것이 홀연히 빠져나간 이 고요에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평화가 있다. 눈을 돌리면 보이는 능선마다 어머니의 젖무덤이 앉아 있다. 산 자에게 무덤은 죽음의 세계여서 굳이 돌아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저 점잖게 앉아있는 무덤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실은 고향이기도 하고, 그리고 나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저 무덤들을 통하여 자연과 우주와 소통하는 생명의 비밀을 만나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과거를 거슬러 공부하지 않고, 역사와 전통에도 고리타분하다 등을 돌리고, 고향은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추락한 세상이 되었다. 그리하면 미래는 과연 어떤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지나간 세계를 홀대하는 일은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한 어머니를 홀대하는 일은 아닐까. 어머니도 소중하지 않은 오로지 나만의 세계가 펼쳐진다면 그곳에 건강한 생명은 남아 있을까. 생명의 경이로움은 남아 있을까. 무작정 변해만 가다보면 인간마저 스스로 상상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뽕잎 배불리 먹은 누에처럼 둥그렇게 몸을 말고 스르르 잠들고 싶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면 좋겠다. 금력도, 권력도, 명예도, 한 순간의 욕망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금력에 눈이 멀고, 권력에 몸을 던지고, 명예에 밤낮을 연연해한다. 욕망 덩어리인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체보다 위대한 존재여서 욕망조차도 더 강대하고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욕망을 가지고 떠나지는 못한다. 결국에는 이승에 버려두고 가야 할 거추장스러운 보따리인 셈이다.

 정말 이 찬란한 문명도, 풍요도, 결국에는 저 비나, 눈이나, 바람처럼, 나와는 상관없이 자라는 덧없는 것들은 아닐까. 내가 이 문명과 풍요로부터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발전하는 사회로부터 내가 받는 것은 어떤 선물일까. 하여 마음을 끝없이 비우다보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들의 어머니일까. 내 숨겨진 본연의 얼굴일까. 인생의 無常함은 한편으로는 어디에도 답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듯도 하다. 세상은 나 자신인가. 아니면 정말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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