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칼럼>용서...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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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칼럼>용서...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들
  • 이영수 기자
  • 승인 2014.12.3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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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6월8일 베트남 사이공 인근 트랑 방(Trang Bang) 마을. 당시 이곳에서는 베트공 ‘해방전선’ 병사들과 베트남 정부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부군은 중화기로 마을을 포격했고 베트공은 이에 처절하게 저항했다. 치열한 베트남 전쟁 속에서도 나름 평화롭게 지내던 이곳 주민들은 겁에 질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살벌한 전투가 거듭되자 정부군은 미군에 이 마을을 포격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민간인 피해에 대한 어떠한 경고도 없었다. 그러자 미군은 이날 오후 4시, 함상 공격기인 ‘스카이 레이더’를 동원해 이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공격기 조종사 존 폴리머(John Plummer)는 마을이 초토화되는 것을 본 뒤 작전 성공을 예감했다. 그리곤 자랑스럽게 본대로 복귀했다.
얼마 후. 존 폴리머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온몸에 불이 붙자 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겁에 질려 울면서 거리를 뛰어가는 어린 여자 아이의 사진 때문이었다. 이 사진 속의 마을은 존 폴리머가 포격을 감행했던 마을이었다. 민간인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지만 정작 민간인 희생자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군을 제대한 존 폴리머는 술에 절어 하루하루를 지냈다. 겁에 질려 울면서 길거리를 뛰어가는 9살의 어린 소녀의 모습이 그의 마음속에 뚜렷하게 박혀있었고, 그는 그 악몽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던 그는 결국 부인과 이혼하게 됐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살아가는 그에게 동료들은 “당시 그 마을에 민간인이 없다는 것을 작전본부가 확인하지 않고 공격을 지시했기 때문에 너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소녀를 찾아가 용서를 빌어야 평화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소녀를 찾을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두 번째 부인을 만나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다소나마 마음의 병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가슴 속에는 돌덩어리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용서를 구하고 싶어도 진정한 용서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6년 5월 마지막 월요일 미국의 현충일 워싱턴 DC 베트남 퇴역 군인 기념관. 한 남자가 이날 기념식사를 마치고 나온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남자를 본 그 여자는 팔을 벌려 그를 안아주면서 “괜찮아요. 이미 용서했어요” 이 여자는 존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어린 여자 아이였다, 그 어린 여자 아이는 이미 성인이 돼 전 세계를 다니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실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바로 김 푹(Kim Phuc)이었다. 존은 그날 저녁 킴 푹을 호텔에서 다시 만났다. 존은 용서를 재확인하고 두 사람은 식탁에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존은 이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떻게 이날의 짧은 만남이 지난 24년 간의 악몽을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받은 용서는 선물이었다” 김 폭 역시 17번의 수술 끝에 정상적인 생활을 지내고 있다. 그녀는 그의 저서 ‘용서와 화해’에서 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존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으며 자신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에게 용서를 구했고 나는 그를 용서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희생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라고...

 #2014년 갑오년이 지나고 2015년 을미년을 맞았다.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용서하기 어려운 사건사고들이 많았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사건과 마우나리조트·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등으로 인한 안전사고 불감증. 청와대 비선의혹 문건유출에 이어 국무총리 후보자들의 연이은 낙마 등 고위공직자 인사파동.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 전 세계 역사상 최초로 발생한 ‘땅콩회항’으로 인한 조현아 전 부사장 구속. 수능출제오류로 인한 교육현장 혼란은 물론이고 통합진보당 해체 역시 우리들을 경악스럽게 했다. 이것들 외에도 우리가 용서하기 힘든 잘못된 것들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용서하기에 우리의 가슴은 그리 넓지 못하다. 하지만 용서할 수 있는 길은 있다. 그것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의 진정어린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망각이라는 어두운 그늘에 숨어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라는 자세는 결코 용서될 수 없다.

 #요한크리토프 아놀드는 자신의 저서 ‘내 마음을 찢는 우는 사자를 몰아내라’에서 용서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용서해야 분노와 증오가 사라진다. 용서해야 내가 살고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용서는 능력이다. 용서로 돌아가는 열쇠는 우리 손안에 있다...우리는 날마다 그것을 사용할지 안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에 앞서 용서받는 당사자의 반성이 앞서야 한다. 절절한 반성도 없는데도 용서한다는 것은 무관심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면, 용서를 구할 일도 없다. 반성할 필요도 없는 신의 경지에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선장과 같은 부류의 지도자나 대한항공 부사장 부류의 지도자,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최고위 정치지도자들부터 갑오년을 반성하고 새로운 을미년을 맞기를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잘못된 것에 대한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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