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칼럼>호랑이 뒤에 세운 여우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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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칼럼>호랑이 뒤에 세운 여우의 권력
  • 이영수 기자
  • 승인 2014.12.01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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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가 여우를 잡았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여우를 잡아먹으려는 순간, 여우가 꾀를 냈다. “내 죽기 전에 할 말이 있소. 본시 나는 하늘에서 내려 보낸 천제(天帝)의 사자(使者)로, 나를 이 땅의 왕으로 정했소. 그런데 당신이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호랑이는 생각했다. 이 여우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命)을 어기는 것으로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여우의 말을 믿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러나 여우는 호랑이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한다면 내가 앞장서서 이 산속을 돌아다닐 테니 나를 뒤 따라 오시오. 그러면 나를 본 모든 동물이 달아날 것이오”라고 말한 뒤, 여우는 호랑이에 앞서 숲속을 돌아다녔다. 그러자 정말 모든 짐승들이 여우를 보고 달아났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선왕(宣王)은 100만 대군을 거느린 강성한 국가를 운영했다. 강력한 군사력과 안정된 정권, 탄탄한 재정으로 초나라는 주변 국가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선왕은 당시 주변 국가들이 재상으로 있던 소해휼(昭奚恤)을 무서워해서 초나라를 침범하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고 몹시 언짢아했다. 급기야 선왕은 사실관계를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 때 소해휼을 시기하던 강을(江乙)이 답했다. “초나라 주변 국가들이 어찌 재상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주변 국가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일개 재상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초나라 병력, 곧 임금심의 강한 군사력입니다” 이는 여우가 호랑이의 권위를 이용해 권력을 누린다는 고사성어 호가호위(狐假虎威)에 얽힌 일화다.

 #중국 후한(後韓) 말. 11대 황제였던 환제(桓帝)는 자식이 없던 탓에 후계자로 13세에 불과한 영제(靈帝)를 12대 황제로 지목했다. 당시 황실은 환관들이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영제가 황제로 즉위한 것은 그들에게 행운이었다. 그러나 황실의 정통성을 내세운 신하들이 환관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지만, 외척과 손을 잡은 환관들의 역습에 번번이 실패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영제는 술과 여자에 빠져 정세를 돌보지 않았다. 환관들은 매관매직은 물론이고 금권과 뇌물정치로 나라를 농단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환관들이 황제의 눈을 가리고 호가호위하는 동안 한나라 이웃에 위치한 강족과 선비족 같은 이민족들의 침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흉년과 같은 천재지변도 잇따랐다. 결국 각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권력은 이미 장양과 조충 등 십상시(十常侍)라 불리는 환관들에게 넘어갔다. 한나라의 멸망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정이 걷잡을 수 없는 권력 투쟁에 휩싸이는 동안 대현량사(大賢良師)라 칭하는 장각(張角) 등이 황건의 난을 일으켰다. 주술이나 부적 등으로 병을 고치면서 태평도라는 종교를 창시한 장각의 세력은 가히 놀라왔다. 장각은 자신을 따르던 수 만 명의 무리들과 함께 한 왕조 타도에 나섰다. 결국 난은 진압됐지만 황제 권력은 쇠퇴했고, 동탁과 같은 지방 호족들의 권한은 극대화됐다.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몸이 쇠약해진 영제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뒀다. 그러자 영제의 부인 하황후의 오빠이면서 대장군이던 하진(何進)은 태자 유변을 후한 13대 황제 소제(少帝)로 즉위시킨다. 하진은 이어 영제의 모친인 동태후를 독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면서 원소와 함께 전국 각지의 토호세력을 불러모아 십상시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하진의 계획은 십상시에게 새어나가고, 계략에 빠진 하진은 죽임을 당한다. 이에 원소와 조조, 통탁 등의 호족들이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환관들을 모조리 잡아죽였다. 이를 십상시의 난이라고 역사는 칭한다.

 십상시 난 속에서도 살아남은 환관 장양과 단규는 소제와 소제의 동생 유협을 볼모삼아 궁을 피하지만, 이들 역시 목숨을 잃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구한 소제와 유협은 원소와 조조 등의 도움으로 낙양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대군을 이끌던 동탁은 이미 낙양에서 병권을 장악한 상태였다. 실질적인 권력을 손에 쥔 동탁은 자신에게 대적할 수 있는 호족들을 각종 이유를 들어 지방으로 내쫒는다. 이어 소제와 하태후를 폐위시키고 유협을 14대 황제, 현제(玄帝)로 즉위시켰다. 실질적인 권한을 손에 쥔 동탁은 허수아비 황제 현제를 앞세우고 온갖 만행과 국정을 농단했다.

 #최근 청와대 십상시 진실규명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문고리 권력자들이라는 인물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정을 운영했는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청와대는 찌라시 수준의 문건이라고 무시하고, 야당은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나라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문건유출 사태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이러한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라고 강변했다. 또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라며 강경한 어조로 대응했다.

 이제 총체적 진실 규명은 사법부로 넘어갔다. 청와대 문건 유출이 사실인지, 문고리 권력이 정말 있는 것인지를 말이다. 문고리 권력이 있다면 이들이 정말 국정을 흔들며 자신들의 권력을 통해 국정을 음지에서 움직였는지를 말이다. 왜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문고리 권력이라는 흉흉한 말이 수그러들지 않는지를... 살아있는 권력의 투명한 움직임이 없다면, 이러한 사태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진정 문고리 권력이 있다면, 문고리 권력자는 호가호위하는 비겁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권력만 있고 책임 없는 정치행위는 독재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양지로 나와 정정당당한 정치 행위를 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 국민은 진실을 알고 싶다. 진실이 당장은 가려질 수 있을지라도 역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국민들에게 명백히 알려준다. 위정자들이 명심해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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