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칼럼> 자리는 전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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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칼럼> 자리는 전리품?
  • 이영수 기자
  • 승인 2014.11.0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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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춘추전국시대 5패왕(覇王) 중 최초로 패왕으로 등극한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이야기 가운데 백미(白眉)를 꼽으라면 관중과 포숙 두 인물이다.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로 남아있을 정도로 이들의 우정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관중이 제환공의 신임을 얻어 어지러운 전국시대에 제환공을 패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할 때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제환공이 공자로 있을 당시 제나라는 극악무도한 제양공이 통치하고 있었다. 제양공의 악행이 온 백성에게 알려지면서 공자로 있던 규는 관중이, 소백(제환공)은 포숙이 보필하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각각 다른 이웃나라로 망명한다. 그러면서 관중과 포숙은 약속한다. 둘 중 한명이 제양공이 죽고 군위를 이어받으면 서로를 구해주기로...

 이러한 상황에서 제양공은 신하 공손무지에 의해 시해된다. 왕위를 차지한 공손무지는 왕의 정통성을 새롭게 세우기 위해 폭정을 일삼다가, 그 역시 제나라 충신들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이 소식을 들은 공자 규와 소백은 제나라로 입성해 왕위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당시 공자 규를 수행했던 관중은 소백이 제나라에 먼저 입성할 것이라 판단하고 약간의 병력과 함께 소백이 움직이는 길목에 매복해 있다가, 소백이 나타나자 활을 날렸다. 화살을 맞은 소백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것을 본 관중은 규에게 돌아가 유유히 제나라에 입성해도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위안했다. 그러나 그 화살은 소백의 쇠로 된 허리띠에 맞았던 것이다. 천운으로 생명을 구한 소백은 제나라에 입성해 왕위를 차지한다.

 뒤늦게 소백이 왕좌를 차지한 것을 깨달은 규는 관중과 함께 제나라 왕위 찬탈을 위해 전쟁을 벌이지만 패퇴하고 만다. 규와 관중은 결국 노나라로 돌아가 칩거하고 있었지만, 포숙은 소백에게 간언한다. “공자 규는 왕위 찬탈을 위해 또 다시 공격할 수 있으니 규는 죽이되 관중은 살려 보내줄 것을 노나라 왕에게 요구하라”는 것이었다. 관중의 활을 맞은 기억이 있던 소백은 둘 다 죽일 것을 주장했지만 포숙의 진언을 받아 규는 죽이고 관중은 살려서 제나라에 입성하도록 노나라와 외교를 벌였다. 관중이 살아 돌아오자 포숙은 제환공(소백)에게 진언한다. “제환공께서 제나라를 다스리는데 만족한다면 포숙으로도 충분하지만, 천하의 패자가 되려면 관중이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관중은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나라의 근본을 잃지 않는 인물이다. 또 그는 충성과 믿음으로 백성을 단결시키고, 예를 지켜 강한 군사를 만들 수 있는 인물”이라고 극찬한다. 포숙을 굳게 믿었던 제환공은 결국 관중을 대부로 임명하고 나라를 다스린 끝에 전국시대 최초의 패왕이 될 수 있었다.

 #춘추전국시대를 종식하고 중국 최초로 천하통일 국가를 세운 진시황(秦始皇). 그의 폭정이 도를 넘어서자 전국 영웅호걸들이 들고 일어선다. 그중 가장 흥미롭고 관심을 끄는 인물은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다. 이들은 천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천민 출신의 유방이 왕족 출신의 항우를 무너뜨린다. 어떻게 이러한 반전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인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할 당시 한나라 왕족으로 알려진 한신(韓信)이 한나라의 부활을 꿈꾸며 항우의 군대에 들어간다. 시정잡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들어가고, 기생으로부터 돈을 받아 목숨을 이어가던 한신은 자신의 능력을 항우가 알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왜소한 그의 체구를 본 항우는 그에게 집극랑(執戟郞)이라는 창잡이 역할만 주었다. 그러나 한신의 지략과 전술, 비범함을 꽤뚫어 본 항우의 군사 범증(范增)은 “한신은 보통 인물이 아니니 죽이든지, 아니면 중용해서 큰 직책을 주어야 할 것”이라고 간언하지만, 항우는 이를 무시해 버린다.

 몇 년 후, 중국의 천하통일을 목전에 둔 항우는 홍문 연회에 유방을 초청한다. 범증은 이 때에도 “유방을 죽여 분란의 불씨를 없앨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항우 앞에서 굽실거리는 유방을 보고 죽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항우는 유방을 살려 보낸다. 이 때 한신은 유방이 사람 볼 줄 아는 안목이 높다고 보고 유방을 뒤따를 것을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유방의 기지에 도착한 한신은 유방이 가장 신뢰하는 소하와 장량의 천거로 원수로 등용된다. 한신은 강력한 군대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소하는 군량과 행정으로 살림을 꾸려나갔다. 장량은 신출귀몰한 전략을 세워 중국 통일시대가 왔음을 유방에게 주장한다. 중국통일을 위해 항우와 일전을 결심한 유방은 군사를 내 일전을 치른다. 그러나 항우에게는 범증이 있었다. 범증의 신기를 쉽게 무너뜨릴 수 없다고 판단한 유방의 신하들은 항우와 범증을 이간시키기 시작한다. 범증을 의심한 항우는 범증을 버리고 유방과 일전을 치르지만, 결국 유방의 군사에게 패해 목숨을 잃게된다. 이 때 유방은 말한다. “나에게는 행정에 능통한 소하가 있었고, 교묘한 책략을 내놓는 장량과 백전백승의 한신이 있었다. 하지만 항우는 천하의 인물 범증마저도 버렸다”고...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시·도지사든 선거에서 승리한 당선자들은 측근에서 보필했던 인물들에게 자리를 줘 보은한다. 관피아 척결을 강조했던 대통령은 박피아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 인천시장으로 선출된 시장 역시 유피아라는 비난에 휩싸여 있다. 자리에 앉은 이들 역시 전리품으로 여기고 당연하다는 듯 자리에 앉는다. 임명하는 사람과 임명되는 사람들 간에 말없이 통하는 것이 일관된 행정이나 정치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들이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가?”라는 오래되고 못된 자조적인 말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왠지 불안하다. 당선자들의 측근이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이어서 그 자리에 앉혀도 논란이 불거지는 현 시점에서 국민들의 정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 인사를 단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독선아닌가. 모든 국민이 열혈 환호하는 인사는 현실적으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국민들의 저항이 적고 그 자리에 앉혀도 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을 임명해야 한다. 역사가 그러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인사가 망사(忘死)가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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