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常한 세계에 솟는 無常한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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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常한 세계에 솟는 無常한 산들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4.10.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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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아라 칼럼'

 어려서 세상천지가 넓은 들뿐인 줄 알았다.
 점차 셈드니 산도 보였다. 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강우식 시인의 장종권에게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이행시 ‘김제평야’이다. 시집 ‘살아가는 벽’에 실려 있다. 필자는 김제평야에서 태어났고 유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아침이면 들판 위로 떠오르는 함지박만한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고, 동진강 하구로 달려나가 밀려드는 바닷물을 지켜보며 거대한 자연의 힘에 몸서리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이지 않던 나지막한 산들이 들판 너머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쓰디쓴 인생도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웬만하면 고향을 떠나서 살 일은 아니다. 고향이라면 제 밥 고스란히 찾아먹을 일도 타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집 나가보아야 생고생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이역만리 타국으로 나가보아야 고생만 죽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그런데 사람은 집에서만 살 수가 없고, 고향에서만 살 수도 없고, 내 나라에서만 살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내 집을 떠나고, 내 고향을 떠나고, 내 나라를 떠난 사람들은,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더 강하게 버텨야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화합을 이야기하고 고향 타향이 어디 따로 있느냐 말하기도 한다. 말은 그렇다. 그러나 그 말도 상황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고 더구나 그 마음속은 가히 짐작도 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이 달라서 옳다는 기준도 저마다 다르고, 그르다는 기준도 저마다 다르다. 세상의 기준이 따로 존재하고, 개인의 기준도 따로 존재한다. 그것이 세상의 답이다. 근거가 있다. 人生無常이라는 말이 인생은 덧없는 것이다로 주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無常의 진리로 들어가면 주역에서 말하는 易에 진배없는 無常 본연의 해석이 엄연히 존재한다.

 아무리 영원을 말해도 우리의 경험계 안에서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無常의 진리이다. 우리의 몸이나 모든 물질 현상은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그 무엇들의 일시적인 집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지극히 짧은 순간도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몸보다도 더 無常하게 변하는 불안정한 흔들림에 지나지 않으며, 이렇게 無常하다는 것은 人生無常이라는 말에서 흔히 느끼는 염세적인 태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나의 진실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는 그대로 세상만사에 적용이 된다고 볼 수 있다.

 無常이라는 말은 ‘常한 것, 즉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말이다. 그러니 전혀 無常치 않은 척, 자신을 다잡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지켜보며 변하라 바뀌어라 주문할 일도 아니고, 그들이 우주적 원리에 의해 어떻게 변해가는 지 지켜보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생기는 산 하나, 눈 감았다가 뜨고 나면 어느새 또 서 있는 산 하나, 그 산들 억지로 넘다보면 다 넘기도 전에 먼저 쓰러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그 산들을 부담스럽게 생각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 산들 역시 어느날 갑자기 거품처럼 소멸될 것이므로. 내 어린 시절의 드넓은 김제평야는 언제나처럼 끝없이 펼쳐질 것이므로.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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