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수 칼럼> 어리둥절한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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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칼럼> 어리둥절한 세금
  • 이영수 기자
  • 승인 2014.09.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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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꼽으라면 5대16국 시대일 것이다. 나라와 나라, 왕과 신하, 백성과 백성들 간의 기본적인 도리도 없던 시대였기 때문이리라. 5대16국 당시. 이존욱은 후량(後兩)을 무너뜨리고 후당(後唐)을 세웠다. 후당을 세운 이존욱은 전쟁에 대해서는 가히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장수였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는 미숙했다. 나라 재정은 물론 인물을 제대로 간택하지 못한 이존욱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고를 채우기 위해 당시 재무를 담당하는 인물로 공겸(孔謙)이라는 자를 선택했다.

 공겸은 국력은 돈이 많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국고 채우기에 급급했다. 대표적인 세금이 작서모세(雀鼠耗稅)였다. 이는 창고에 보관중인 곡식 중 쥐와 새가 훔쳐먹는 분량까지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악랄한 세법이었다. 공겸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길거리를 지나가는 백성을 대상으로 골목세는 물론이고 수로세, 양잠세, 누룩세까지 마구 거둬들였다. 백성들의 고혈을 빼서라도 국고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세법이었다. 공겸의 횡포가 이어지자 그의 아버지는 “공겸은 이존욱이 사망하면 사지를 찢기는 형을 받고 죽을 것”이라며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이 과중한 세금에 허덕이며 민란의 조짐이 보이자 이존욱의 양아들 이사원이 이존욱을 죽이고 왕으로 즉위했다. 그가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공겸을 사형시키고 민심을 달래는 것이었다. 공겸을 사형한 뒤 후량은 7년간 풍년이 들어 5대16국 시대에 백성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세금은 근대 유럽에도 있었다. 18세기 러시아의 절대주의 확립자로 잘 알려진 표드로 대제는 일명 수염세를 거둬들였다. 표드로 대제는 당시 귀족의 상징이었던 긴 수염을 깍고 짧은 소매의 옷을 입도록 명령했다. 영국 등 서구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표드로 대제는 긴 수염을 자르고 치렁치렁한 옷 소매를 짧게하는 서구 풍속을 따르면 나라가 부강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반발이 거셌다. 긴수염을 기르는 것은 러시아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맞선 것이다. 그러자 표드로 대제는 수염을 기르는 대신 수염 길이만큼 세금을 거둬들였다.

 또 영국은 집에 설치된 창문 수에 맞춰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명 창문세를 제정했다. 17세기 때 영국 윌리엄 3세는 부유층이 사는 집은 창문이 많다는 것을 보고 창문세를 신설한 뒤 세금을 거둬들이기 시자했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은 창문세를 피하기 위해 기존 주택의 창문을 벽으로 변경하거나 신설 건물에는 아예 창문을 달지 않았다. 세금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물론 프랑스 역시 14세기 무렵 창문세를 만들고 세금을 거둬들였다는 기록도 있다. 난방용 화로(火爐) 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화로세는 물론이고 농부가 죽으면 군역을 피한다는 이유로 장례식에 물리는 장례세 등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세금도 많았다.

 #자유와 평등, 형제애의 이념을 표방하고 시민계급 중심으로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아이러니하게도 귀족층에서 촉발됐다. 1780년대 프랑스는 왕정 밑에 교회집단의 제1신분과 귀족인 제2계급, 평민 신분의 제3신분으로 구성돼 있었다. 평민 중에 상인과 제조업자, 변호사 등은 자유 직업인으로 부루주아로 불리었다 이들은 학식과 재력에도 불구하고 정치 참여는 불가능했지만 세금은 내야했다. 하지만 성직자와 귀족은 많은 토지와 재산에도 불구하고 세금은 면제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는 미국과의 전쟁과 대흉작으로 국가재정은 고갈 상태에 이르게 됐다. 그러자 루이 16세는 세금을 높여 재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동안 면세 특권을 누려온 특권 신분층에게 조세 부과 방침을 내놓았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특권층은 왕을 견제하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하고 특권층 세금면제를 주장했다. 그러나 삼부회에 포함된 특권층이 평민 삼부회원에 밀리자 특권층의 희망대로 세금면제가 벽에 부닥쳤다. 이 과정에서 국왕이 국민의회를 무력으로 해산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시민들은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내용의 인권선언을 하고 앵발리드 기념관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등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귀족들이 세금을 피하기 왕정을 대상으로 혁명을 시작하고 시민들이 혁명을 완성한 셈이다. 물론 프랑스 혁명을 이렇듯 단순하게 서술하기 어렵지만 핵심이 되는 것은 세금이었다.

 #최근 정부는 현재 주민세를 시ㆍ군ㆍ구에 따라 1인당 2000~1만 원에서 2년에 걸쳐 1만 원 이상 2만 원 미만으로 올린다는 방침을 밝혔다. 자동차세 역시 2017년까지 100% 인상하고 지방세 감면율도 떨어뜨리는 방안이 추진된다. 애연가들에게 반발을 사고 있는 담배가격도 현재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담배가격을 올리는 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여기에다 담배가격을 올리는 것은 결코 증세가 아니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담배 값 올리는데 그동안 없었던 개별소비세가 부과된다. 개별소비세는 사치성 물품의 소비 억제를 목적으로 한 특별소비세로 지난 2008년 명칭이 변경된 것이다. 그런데 서민이 소비하는 담배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상위 1%와 최하위 계층이 담배를 피워도 똑같은 세금을 내고 담배가 사치성 물품으로 승격(?)되는 셈이다. 소득세와 취득세, 상속세, 법인세 등 직접세에 대한 증세 논의는 없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주장한 “교육과 세제를 통해 불평등을 처방하라”는 발언을 놓고 각계각층의 논란이 뜨겁다. 그는 역사적인 과세 자료와 국민계정체계(SNA)를 이용해 소득과 부의 불평등 연구에 관한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의 발언을 놓고 찬반 논란이 없을 수 없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복지가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증세 없는 복지가 애당초 불가능했다면, 지금이라도 증세의 타당성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많은 국민은 증세라고 여기는데 정부만 증세가 아니라면 누구의 판단이 맞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다만 피케티가 거듭 강조하고 있는 “시장에 내맡기면 경제적 불평등은 계속 커질 수 있는 만큼, 부자의 재산과 소득에 세금을 더 매겨야 한다”는 것이 큰 메아리로 남는다. 우리 모두 되새겨야 할 대목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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