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송의 장엄한 모습을 담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주변의 또다른 금강송과 잡목들을 베어냈다는 어느 사진작가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아름답고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을 담기 위해 애먼 자연을 아무렇게나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그 사진 작품은 장 당 그가 낸 벌금보다 비싸게 팔렸다고도 한다. 그 사진작품은 보는 이들 모두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과 경이로운 환경에 대한 중대한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을 법도 하다. 억지로 용납하자면, 일부의 작품 구도상 거추장스러운 나무들을 쳐내긴 하였지만 그보다 더 큰 메시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 이해할 수도 있기는 하겠다는 것이다.
기사의 핵심은 대왕송의 위의를 찍기 위해 주변의 신하송을 모조리 베어버렸다는 것으로 이는 명백한 자연훼손이라는 것이지만, 필자는 약간 다른 관점으로 이 기사를 해석하고자 한다. 이른바 大를 위하여 小는 모조리 희생시켜버렸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논리의 비약일지는 몰라도 이 시대에 팽배한 대단히 위험한 사고의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겠다. 거대한 것을 위해서라면 사소한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대의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 민족과 국가, 사회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잘한 아픔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런 사고가 만약 이 땅에 깊숙하게 뿌리를 내렸다면 이는 참으로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약한 개인의 한 사람으로써 허무해지고 참담해짐을 금할 수가 없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진 거대한 조직들, 이른바 개인들의 집합체인 사회나 국가는 본질적으로 본래의 작은 개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의명분이라는 것 역시 구성원들의 안전과 이익이 기본이 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그래서 개인들 중 누구 하나도 불쌍한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 거대 조직의 할 일이다. 거대 조직이 무슨 일을 하던 간에 소속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아픔을 모른 체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거대화만 이루어지면 곧바로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그 권력을 외부세계에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의 존재의미인 소속 개인들에게 휘두른다면 이 역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거대한 大를 위하여 왜소한 小가 희생당하고 무시당하는 세상이 아니라, 小를 위하여 大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본질을 잊지 말아달라는 주문이 왜 이다지 어려운 일인지 아리송하고 궁금하다. 이미 본말은 전도되고도 남았다는 느낌이 웬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몇 개월 동안 개인들의 아픔이 너무 많았다.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한 개인들의 희생이 줄을 이었으며, 그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국민적 자존심까지 뭉개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거대 국가조직의 위의를 위해 개인의 아픔과 희생을 한시라도 빨리 덮으려는 움직임도 느껴진다.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아픈 개개인이 주인인 국민의 나라이다. 大를 위해 小의 아픔과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小를 위해서만 大는 그 존재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억지로 이해하지 않아도 대단히 자연스럽게 변해버린 본질의 변화가 하수상하다.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