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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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별이다
  •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4.08.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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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아라 칼럼'

 달빛 아래 허리춤을 내리고
 희멀건 허벅지로 춤 한 번 추고나면
 이리들 야단이다 시인은
 눈물을 찔끔거리며 가엽단다 뽀얀 얼굴이
 어둠에서 익은 달뜬 유혹의 목소리가
 너무 앳되어 안쓰럽단다
 꿈길에 들어서는 달밤이란 무대에 알몸으로
 우유빛 안개를 휘감고 서면
 나는 낮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별이다

장종권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계간 리토피아 49호에 수록된 정승열 시인의 「달맞이꽃」이라는 시이다. ‘달빛 아래 희멀건 허벅지 드러내고 알몸으로 춤추는 시인’, 그의 ‘달뜬 유혹의 목소리’가 오히려 ‘안쓰럽다’는 세상. 그래도 꿈길인 듯 달밤의 안개 속에서 춤추는 그는 ‘낮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별’이다.

 시가 점점 사라져가는 세상이 되었다. 적어도 벌건 대낮에는 시를 읽지 않는다. 세상살이가 복잡하고 힘들다보니 시를 읽으며 꿈을 꾸기에는 벅차다. 시는 밥이 아니고, 돈이 아니고, 이제는 명에도 아니기 때문이다. 시를 읽다가 반거충이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시인 역시 밤의 세계로 숨어들어간다. 밤 중의 밤, 사실은 달빛조차도 불편하다. 우유빛 안개 속에 얼굴을 감추고, 밤을 노래하는 살풀이에 한창이다. 시인은 낮을 읽어 밤에 춤추는 존재가 되었다. 부끄러운 대낮을 한사코 피해 아무도 보지 않는 달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몸을 푼다.

 그러나 밤이 되어 밤인 사람은 없다. 밤이라고 하여 죽은 듯이 사라지는 법은 없다. 우리는 밤이어서 더욱 아름다워지고, 그리고 더욱 강인해지고, 더욱 깊고 강력한 꿈을 꾸게 된다. 어둠이 가져다주는 비밀스러운 자유는 오히려 신비스러운 세계를 가져다주고, 새로운 내일을 향한 창조적인 꿈속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모두가 숨을 죽인 달밤에 신비롭게 피어있는 달맞이꽃을 정녕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다면 애당초 달맞이꽃은 꽃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낮에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기실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더욱 예민한 눈을 뜨고,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읽어가는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이 있어 밤은 밤대로 아름다우며 한낮의 지난함을 견디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읽어가는 시인들이 있어 밤에도 눈뜬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온갖 질곡들을 견뎌낼 수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시인이 아니고서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면야 그야말로 진정한 시인이리라. 그러나 시인이고서도 진정한 시를 쓸 수 없다면 그것은 그 시인의 불행이 아닐까. 시인이 되어 시를 쓴다면 천 년 후에까지 남을 만한 걸작을 쓰고 싶다던 이규보만큼은 아니라하더라도, 세상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제대로 된 시 한 편 남기는 것이 꿈일 법도 하다.

 너무 겸손하여 시인이라는 말조차도 꺼내기 쉽지 않은 시인이 정승열 시인이다. 벌건 대낮을 피해 달밤의 안개 속에서 알몸으로 춤추는 그의 시심이 지심을 뚫고 나와 이미 거목으로 자라고 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달맞이꽃이 인천의 달밤에 보란 듯이 화끈하게 피어있다.
 

 ◇ 장종권
1985년 현대시학 추천완료. 시집 '아산호 가는 길', '꽃이 그냥 꽃인 날에',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외. 장편소설 '순애'. 창작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인천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계간 리토피아, 아라문학 주간.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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