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1월 12일] 사상의학 창시 '동마 이제마'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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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1월 12일] 사상의학 창시 '동마 이제마' 선생
  • 여운균 기자
  • 승인 2020.11.1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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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균 기자] 오늘은 조선 말기 한의학자로 문관, 무관, 시인을 지내고 대한제국의 함경남도 고원군수를 지낸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 1837년 4월 23일~1900년 11월 12일) 선생이 운명한 날이다.

▲ 생애

동마 '이제마' 선생의 초상
'이제마' 선생 초상

이제마는 1837년 함경도 함흥에서 서자로 출생했다. 그의 가문은 조선 건국 이전의 추존왕인 목조대왕의 둘째아들인 안원대군의 후손인 왕족 집안이다.

이수광 작가에 따르면 모친은 지적 장애인이라 비장애인인 부친과 결혼을 늦게 했고 첩으로 시집을 갔는데 할아버지가 꿈에서 말이 날뛰는 모습을 보고 '이제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주역을 애독하고 13세 때인 1850년 향시에서 장원한 후 전국 각지와 러시아, 만주 등지를 다니며 견문을 넓혔다고 알려졌다.

36세 때 1872년에 무과에 급제해 등용됐고 50세 때였던 1886년에 진해현감이 되었으나 1887년에 사직하고 60세 때인 1897년 최문환의 반란을 평정해 고원군수에 임명됐으나 이듬해인 1898년에 사직했다.

그는 1900년 64세로 생을 마감 하기 전까지 고향에서 '보원국'이라는 한의국을 개설하고 환자를 보살폈다.

그의 저서로는 `동의수세보원`, `천유초(闡幽抄)`, `제중신편(濟衆新編)`, `광제설(廣濟說)`, `격치고(格致藁)` 등이 있다. (현재 `동의수세보원`에는 `광제설`이 포함되어 있다)

▲ 동의수세보원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은 이제마가 저술한 의학서적으로 4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고종 30년(1893년)에 착수해 고종 31년(1894)에 상·하 3권을 완성했다.

고향인 함흥에서 의업에 종사하면서 광무 4년(1900년)에 태음인론까지를 추보했으나 태양인 이하의 3편을 미쳐 끝내지 못하고 사망해 1901년 6월에 함흥 문하생이 계를 조직해 신구본을 합해 출판했다.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다르므로 같은 병이라도 그 치료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을 통해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네 가지 체질이 있다고 하는 `사상의학`을 제창했다.

사상의학의 원전으로 병을 다스리는 데 목적이 있을 뿐 아니라 유학적 측면에서 각자 체질에 대한 예방의학적 양생과 몸가짐,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 사상의학

한국, 중국, 일본에서 발달한 동양의학은 인체와 자연의 기를 중시하는 의술로 ‘음양오행’의 기는 음양으로 크게 나뉘고 다시 오행(목, 화, 토, 금, 수)으로 세분된다.

이런 논리에 따라 동양의학은 인체의 주요 구성을 ‘오장육부(五臟六腑)’로 파악해 왔다.

이제마는 오행이 아니라 사상(四象)이라는 새로운 체계에 입각해 의학을 구축해 인체를 ‘사장사부(四臟四腑)’로 파악하고 환자의 병증에만 치중한 치료에서 벗어나 환자의 체질을 일차적으로 중시하는 새로운 의학을 주장한다.

그는 많은 환자를 진찰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의 체질을 태음(太陰)ㆍ소양(少陽)ㆍ태양(太陽)ㆍ소음(少陰)으로 나눴다.

기본적 특징으로 태양인은 폐가 크고 간이 작으며, 태음인은 간이 크고 폐가 작으며, 소양인은 비장이 크고 신장이 작으며, 소음인은 신장이 크고 비장이 작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역대의 의서를 섭렵했지만 자기 병에 해당하는 치료법이 없어 고민하던 끝에 몇 가지 민간약을 얻고, 평생을 연구한 유학사상과 철학사상을 인체의 생리와 병리에 적용하다 결국 체질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출처: 위키백과 / 네이버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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