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11월3일]롯데 창업주 ‘신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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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11월3일]롯데 창업주 ‘신격호‘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11.0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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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기자] 1922년 오늘(음력 10월 4일) 롯데그룹 창업주이자 명예회장인 신격호가 출생했다.

그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등과 함께 대한민국 1세대 기업인이며 정주영 명예회장과 함께 손꼽히는 자수성가 재벌이기도 하다.

1948년 풍선껌 사업으로 일본에서 롯데를 설립한 이후 유통ㆍ물류ㆍ식음료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한국에 진출하여 한국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으로 키워낸다.

그러나 두 아들 간의 경영권 분쟁과 경영 비리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확정받는 등 시련을 겪다가 2020년 1월 19일 99세에 숙환으로 사망한다.

 

▲대한해협의 경영자

부산에서 사업가의 꿈을 키우던 그는 1941년 부인 노순화를 비롯한 가족과 고향을 모두 뒤로 한 채 성공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한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하나미쓰라는 지인에게서 5만 엔이라는 거금을 빌려 커팅 오일과 밥솥을 만드는 공장을 차려 운영하지만, 전쟁통에 폭격을 받아 완파된다. 이후 하나미쓰에 다시 돈을 빌려 공장을 운영하지만 1년 반 뒤 또다시 미군의 폭격으로 망한다.

1946년 와세다 고등 공업학교 화공학부를 졸업하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린 후 세탁비누, 포마드 크림 등 유지류를 만드는 공장을 차려 1년 반 만에 하나미쓰에 빌린 돈을 모두 갚고 감사의 표시로 집 한 채까지 선물하는 등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약간 남은 밑천으로 연구소를 차려 당시에 시판되고 있는 껌들의 장점을 모아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기를 얻는 껌을 개발했다. 이에 신격호는 투자자를 모집해 1948년 일본에서 롯데를 설립하고, 일본 껌 시장의 점유율을 70%까지 차지했다.

껌 사업의 성공에 이어 초콜릿, 사탕, 빙과류 등으로 사업을 넓혔으며 이후 상사, 부동산, 물산 등으로 계열사 확장에 노력했다.

1965년 한일수교로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해지자 신 명예회장은 한국에 진출해 1967년 자본금 300만 원으로 롯데제과를 창립한다. 그러나 1970년 롯데껌에서 쇳가루가 검출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는데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를 무마해주는 대신 호텔을 건설하라고 지시하면서 지하 3층, 지상 38층의 소공동 롯데호텔을 1973년 건축하게 된다. 

이후 1976년 공기업이던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을 인수하고 1979년에는 롯데 쇼핑센터(현 롯데백화점)를 열어 국가 기간산업 진출 및 국내 유통 관광산업 현대화의 토대를 마련한 그는 축적된 자본과 기술을 기반으로 롯데를 식품ㆍ유통ㆍ관광ㆍ레저ㆍ건설ㆍ중화학 분야를 갖춘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문학을 동경했던 그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인 샤롯데의 애칭인 롯데를 사명으로 사용했다.

▲가족과 분쟁

신격호 명예회장은 5남 5녀(10남매) 중 장남이며, 2남 고(故) 신철호 롯데 사장, 3남 신춘호 농심그룹 그룹 회장, 4남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5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등과 불화를 빚었다.

2남 고(故) 신철호의 경우 1950년대 회삿돈 횡령 의혹으로, 3남 신춘호와는 라면 사업에 대한 견해 차이로 사이가 멀어졌다. 또한 5남 신준호와는 김영삼 정부 시절 부동산 실명제가 시행되며 토지 분쟁을 벌였고, 막내 여동생 신정희는 그룹 로고를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 롯데홀딩스 경영권을 두고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형제의 다툼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신격호는 정신적 제약으로 판단력 등이 부족한 상태라고 판단돼 한정후견 대상으로 결정됐으며 치매 판정도 받았다.

또한 딸 신영자 롯데 장학재단 이사장의 횡령ㆍ배임 관련 재판 그리고 비자금 문제 등 내부 비리와 박근혜 게이트 관련한 오점을 남겼다.

2019년 10월 경영 비리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형 집행 정지가 인용되어 소공동 롯데호텔 등에서 거주하다 2020년 1월 19일 9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출처: 다음 백과 /두산 백과 /온라인 커뮤니티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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