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5월 25] 오프라윈프리쇼, 25년 만에 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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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 5월 25] 오프라윈프리쇼, 25년 만에 종영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0.05.25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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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프리의 삶도 조명받아

[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전세계적으로 시창자를 확보한 미국의 대표적인 오프라 윈프리 쇼가 막을 내렸다.

이 토크쇼는 오프라 윈프리가 1986년 9월 8일부터 2011년 5월 25일까지 진행했다.

시카고의 ABC 직영국 WLS 로컬 토크로 시작하여, CBS에서 배포하는 신디케이션 프로그램으로 미국 전역에서 방송됐다.

세계 140 개국에서 방송되었으며, 미국에서는 4600만명의 주간 시청률을 자랑했다.

이 쇼의 진행자인 윈프리의 인생사가 또한 조명을 받았다.

오프라 윈프리는 시골인 미시시피주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어머니께 버려졌고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어머니가 계시는 밀워키로 이주하여 자라온 그녀는 어린 시절 상당한 고난을 겪었다.

2014년 오프라 윈프리
2014년 오프라 윈프리

그녀는 9살에 사촌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14살에 미혼모가 됐고 그녀의 아들이 2주 후에 죽는 고통을 겪었다. 그녀는 테네시주에 이발사인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보내지기도 했다.

그 후 그녀는 고등학생때 라디오 프로에서 일을 얻었고 19살에 지역의 저녁 뉴스의 공동 뉴스캐스터를 시작했다. 그녀의 즉흥적 감정 전달 덕분에 그녀의 활동무대는 낮시간대의 토크쇼로 옮겨졌다. 지역 ‘오프라 윈프리 쇼’ 였다.

1983년 오프라 윈프리는 시카고에서 낮은 시청률을 가진 30분짜리 아침 토크쇼인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의 진행자가 됐다. 오프라 윈프리가 맡게 된 지 한 달 후 그녀는 시카고에서 가장 인기있는 토크쇼, 도나휴를 능가했다. 그 쇼는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꼈다.

그녀가 시카고의 삼류 지역 토크 쇼를 최고의 자리로 끌어올리자 그녀는 제작 회사 하포 (harpo)를 설립했다.

친숙한 고백적 형태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낸 것에 신용을 얻으며 그녀는 토크쇼 장르를 대중화시켰고 큰 변화를 일으켰다.

오프라 윈프리는 20세기의 가장 부자인 흑인계 미국인으로 꼽혔고, 미국의 상위 자산가들 중 첫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흑인 억만장자가 됐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도 불렸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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