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2월19일] 중국 실용주의 ‘덩샤오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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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2월19일] 중국 실용주의 ‘덩샤오핑’ 사망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0.0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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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흑묘백묘론 실용주의 노선 추진
정치, 사회주의 체제유지 정경분리의 정책 추진

[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덩샤오핑(등소평, 1904년 8월 22일 ~ 1997년 2월 19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가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제5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의 제5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그는 공산당에 입당해 제7군 정치위원 대장정에 참여했으며 1945년 공산당 중앙위원이 된 후, 정무원 부총리, 재정 부장, 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총서기, 중소 회담 중공 측 대표단장 등을 지냈다.

문화 대혁명부터 여러 번 마오쩌둥의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기적적으로 복귀, 중화인민지원군 총참모장,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부총리 등을 거친 뒤 1981년부터 1983년까지는 국가원수 직을 지냈다.

1983년 이후 국가원수직과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직에서 물러났지만 군사위원회 주석 직에 머무르며 실권을 쥐었다.

1989년에는 천안문 사태의 강경 진압을 주관, 한때 국가 주석직의 교체에 관여하고, 군부 내에 세력을 형성한 ‘양상쿤’을 몰락시키고 장쩌민을 후계자로 내정하는 등의 막후 실력을 행사하였다.

오랜 정치 경력으로 권력을 다져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 출생과 유학생활

프랑스 유학 시절
프랑스 유학 시절

1904년 청나라 쓰촨 성 광안의 한 마을에서 지주 덩원밍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2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파리에서 르노자동차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를 배웠다.

르노에서 트랙터를 만드는 금속 노동자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금속 노동 경험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24년 중국 공산주의 청년동맹 유럽지부에 들어갔으며, 기관지인 적광(붉은 태양)을 만들었다.

1926년 소련 유학시절 중국 공산당 당원이 된 그는 다음해 중국으로 돌아왔다.

▲ 마오쩌둥 만남과 국공내전

중국 공산당은 소련파와 마오파의 당권경쟁이 치열했는데, 마오쩌둥이 지면서 덩샤오핑도 실각했다. 하지만 소련파의 이론은 중국에 맞지 않았다.

소련파는 도시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중심이라면서 도시 무장투쟁을 시도했으나 도시 노동자 계급이 없는 중국에서는 실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오쩌둥과 왕자샹과 함께
마오쩌둥과 왕자샹과 함께

하지만 마오쩌둥은 중국 인민의 대부분이 농민이라며 농민소비에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이 입증된 것이다., 1935년 ‘대장정’ 도중에 열린 회의에서 ‘마오쩌둥 이론’이 인정되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그는 류보청이 사단장인 팔로군 129사단 정치위원으로 일했다.

화이하이 대전에서 덩샤오핑이 이끈 60만 명의 군대는 100만 명의 국민당 군대를 크게 이겼다.

1946년부터 1949년 국공내전시기에 화중, 화남, 서남지방을 정복해 4개성을 다스리는 제1서기가 됐다.

국공내전 중 류보청과 함께
국공내전 중 류보청과 함께

▲ 대약진 운동과 경제개혁

덩샤오핑은 이 시절 실용주의를 주장한 류샤오치 등과 경제 개혁의 기초를 만들었다.

마오쩌둥이 대약진 운동 실패의 책임을 지고 국가 주석을 사퇴하자 뒤를 이어 류샤오치가 국가 주석 및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되었다.

류샤오치는 마오쩌둥의 기존 정책을 비판하고 “생산보다 구매가 더 좋고 구매보다는 대여가 더 좋다”라며 시장경제 정책 도입을 역설하고,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물질적으로 보상하는 제도를 갖추고 부르주아 엘리트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덩샤오핑은 류샤오치와 노선을 같이하면서 마오쩌둥과 대립하게 되었다.

마오쩌둥은 1966년 5월 16일 공산당 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자본주의, 실용주의' 노선을 없애고 공산당을 개조한다는 명분으로 중국 전역에서 홍위병을 양성하고 '문화 대혁명'을 일으켰다.

우한의 한 공장을 방문
우한의 한 공장을 방문

▲ 실각과 복귀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모든 자리에서 실각했다.

이후 1973년 저우언라이의 추천으로 국무원 부수상으로 복권된 그는 당 중앙위원회 부주석, 정치국위원회 총참모장 등을 지내며 다시 공산당 정치 세력의 중추가 되었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1976년 1월 저우언라이가 사망하자 다시 자리에서 밀려난 것이다.

그러나 그해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주석이 된 화궈펑은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이듬해 7월 그를 복직시켰다.

다시 복귀한 덩샤오핑은 당을 장악하기 위해 화궈펑과 대립했고 폭넓은 지지층을 기반으로 화궈펑을 밀어냈다.

이후 정부와 공산당 내의 요직을 자신의 인물들로 채워가며 1981년 그는 공산당 내 모든 실권을 장악했다.

▲ 혁명 활동과 4대 근대화 추진

덩샤오핑은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의 개혁을 단행해 경제 발전을 이룩하며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를 완성하는 데 주력했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경제 정책에서는 실용주의 노선을 따라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이념에 관계없이 효과적인 정책을 받아들여 중국을 근대화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농업의 근대화, 공업의 근대화, 과학의 근대화, 기술의 근대화로 요약된다.

네 가지 근대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중국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며, 모든 정책은 사회주의적 가치관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선순위를 두고 채택했다. 

그는 각 지역으로부터 제안된 개혁 정책이 서방의 자본주의와 비슷하더라도 성공적이라면 도입했다. 즉 그의 개혁은 지역에서 중앙으로 이어진 아래로부터의 개혁이자 국가의 직접적인 개입을 줄이고 시장경제를 통해 스스로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덩샤오핑이 취한 중국의 경제 정책을 ‘흑묘백묘론’이라고 한다. 덩샤오핑이 1979년 미국 방문 후 귀국하여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것이 좋은 고양이”라는 중국 속담을 빌어 표현한 데서 비롯됐다.

1975년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1975년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 개혁 정책 지원

투자에 있어서도 문호를 개방하여 서구의 자본이 유입되고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가 양성됐다.

이렇게 기업가와 농민의 이윤을 보장하는 등의 자본주의적 경제 정책으로 중국 경제는 연간 10퍼센트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덩샤오핑은 공산당 부주석이자 정치국 상임위원회 의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서 군권만 장악하고 있었으나, 총리나 총서기 등 최고위직에 자신의 인물을 포진시킴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정책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상임위원회에서 물러나고 후야오방이 총서기직을 사퇴하면서 덩샤오핑의 지배 체제에 위기가 다가오게 된다. 

▲ 텐안문 사건

덩샤오핑 동상
덩샤오핑 동상

1989년 6월 4일 톈안먼 광장에서 정부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른바 톈안먼 사건이다.

이것은 덩샤오핑 집권 후 이루어진 개혁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급속도로 이루어진 경제 발전에 비해 정치 개혁이 부진하여, 고위층이 부패하고 빈부 격차가 심해진데다 불만이 점점 커졌으며, 당 내에서 과감한 정치 개혁을 주장하던 후야오방이 죽고 나자 공산당 정부의 보수화가 더욱 심해진 데 대한 비난이 시위로 연결됐다.

'톈안먼 사건'은 중국의 정치 체제에 반기를 든 민주화 시위였다. 덩샤오핑과 공산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무력으로 맞섰으나 시위는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군사들은 무차별 발포로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고 그 과정에서 학생·시민·군인 등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무력으로 위기를 이겨 낸 덩샤오핑은 계속해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존 보수파를 대신해 개혁파인 주룽지 등을 발탁하고 1994년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했다. 

*출처: 위키 백과 / 중국사를 움직인 100인/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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