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2월4일]새가 되고 싶었던 찰스 린드버그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2월4일]새가 되고 싶었던 찰스 린드버그
  • 김철한 기자
  • 승인 2020.02.04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인천신문 김철한 기자] 1902년 오늘은 ‘1927년 뉴욕에서 파리까지 최초의 대서양 횡단 무착륙 단독비행’을 한 '찰스 린드버그'가 출생한 날이다. 

그는 약 5793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33시간 30분 동안 비행했다. 이를 통해 2만 5000달러의 상금과 롱 이글(Long Eagle)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1953년에 출간된 그의 자서전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찰스 린드버그의 모습
찰스 린드버그의 모습

▲대서양 횡단

1927년 5월 21일 밤 9시 52분 파리 상공. 린드버그의 시야에 에펠탑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30분 뒤 그는 수많은 관중이 든 호롱불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 르부르제 공항에 착륙했다. 

최초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 횡단 비행에 걸린 시간은 33시간 30분이었다.

성공하기까지 그의 노력과 고난은 계속 되었다.

육군 비행 학교를 졸업하고 항공 우편 조종사로 체공 시간 2,000시간을 쌓으며 키운 꿈은 두 차례 추락 사고에도 꺾이지 않았다.

사업가들의 도움으로 1만 580달러를 들여 제작한 '세인트루이스의 정신(Spirit of St. Louis)'호에 보다 많은 연료를 싣기 위해 라디오와 무전기, 낙하산마저 가져가지 않고 유리창 자리마저 연료통으로 가렸다.

세계는 26세 영웅의 탄생에 환호했다.

파리 시민 10만여 명이 그를 어깨에 태우고 행진 했다.

미국의 쿨리지 대통령은 귀국하는 그를 위해 순양함을 보냈고, 뉴욕에서는 100만명의 환영 인파가 몰렸다.

세계 2차대전 당시 유나이티드항공기회사의 고문 자격으로 태평양에서 임무여행을 하는 동안 50회의 전투비행을 했으며, 그 뒤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자 독일 항공학의 발전을 조사하기 위한 해군기술사찰단에 참여했다.

그는 1927년 의회의 특별결의를 통해 수여된 명예훈장 이외에도 많은 훈장과 상을 받았다.

정부에 대한 공로로 1954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공군 예비역준장으로 임명되었고, 만년에 환경운동가로 활동했다.

1974년 8월 26일 하와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67번째 도전자

찰스 린드버그는 대서양을 최초로 비행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67번째 도전자였다.

린드버그의 유일한 최초 기록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대륙에서 대륙으로 처음으로 혼자 무착륙으로 비행했다는 것이다. 

그가 당시로서는 무모했던 대서양 횡단에 도전 한 것은 1919년 호텔 사업가 레이몬드 오티그가 내 건 2만5천달러라는 엄청난 상금 때문이었다.

▲시련

1932년 3월 그의 2살된 아들 찰스 오거스터스 2세가 집에서 유괴되었고, 두달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사건은 그의 세계적인 인기 때문에 1930년대의 가장 유명한 범죄가 되었다.

린드버그는 1938년 독일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으며, 그가 미국에 돌아온 뒤인 1940~41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중립을 지지하는 연설을 해 1941년 4월 육군항공대 예비역위원회에서 사임했다. 그의 최대 오점이 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 다음백과 / 인터넷커뮤니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