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8월 11일]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 지도자 ‘윤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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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8월 11일]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 지도자 ‘윤희순‘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1.08.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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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오늘 태어난 윤희순(1860년 8월 11일 ~ 1935년 8월 1일)은 여성 최초의 의병지도자였다. 조선독립단 학교를 설립했으며 결혼 이후 지속적으로 항일운동을 펼쳤다.

여성 최초 의병장 윤희숙
여성 최초 의병장 윤희순

▲ 의병에 뜻을 품다

윤희순은 경기도 양주군 구지면(현 구리시)에서 부친 윤익상의 큰딸로 태어났다.

유학자 집안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16세 되던 1876년 춘천 의병장 외당 유홍석의 장남이며, 팔도창의대장 의암 유인석의 조카인 유제원가 결혼했다. 이후 시아버지 유홍석의 영향으로 의병운동에 뜻을 두게 됐다.

▲ 의병활동

일본이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1896년 단발령을 발표할 무렵 윤희순은 ‘안사람 의병가’등 여러 노래를 지어 항일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여성들도 구국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1907년 일제가 고종황제를 폐위시키고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그녀는 군자금을 모아 가정리 여의내골에서 놋쇠와 구리를 구입하고 탄환, 유황 등으로 화승총에 쓸 화약을 직접 제작·공급하는 탄약제조소를 운영한다.

또한 여성의병 30여 명을 모집해 다른 의병을 뒷바라지하거나 의병 훈련에 참여했다.

윤희순은 직접 의병 전투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후방에서 그들을 적극 지원하며 의병운동에 힘을 쏟았다. 이에 그녀는 8편의 의병가와 4편의 경고문을 남겼다. 이는 최초의 한글 의병가이며, 민족 저항 시가이다.

▲ 항일운동

1911년 시아버지 유홍석과 남편 유제원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2년 초 환인현으로 이주해 무논을 개발하고 벼농사를 지어 군자금을 모집했다. 또한 항일 인재를 양성하려고 ‘노학당’을 창립해 김경도, 박종수를 비롯한 50여 명의 항일 운동가를 양성했다. 그녀는 중국인과 한국인에게 항일애국 노래를 가르치기도 했다.

지속적인 항일운동 와중에 1913년 시아버지 유홍석이, 1915년에는 남편 유제원 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고, 일제의 탄압이 강해져 노학당이 폐교되자 무순 포가둔으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중국인들과 힘을 합쳐 ‘조선독립단’을 만들었으며, 1926년에는 조선독립단 가족부대, 조선독립단 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이 무렵에는 그녀 역시 직접 의병 훈련에 참여했다. 그녀는 신빈 영릉에도 조선독립단 학교 분교를 두어 항일운동가 양성에 전력을 다했다.

1932년에는 중국 무순에서 항일 운동을 하다가 계획이 사전에 발각, 실패하게 되자 장소를 옮겨 봉성현 석성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 건국훈장 추서

한국 최초 여성 의병장 윤희순은 1935년 중국 혜성현 묘관둔에서 8월 1일에 사망 했다. 대한민국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후 2008년 9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그녀의 ‘윤희순 의병가사집’은 등록문화재 제750호로 선정 되있다.

*출처: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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