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8월 9일] 영화계의 선구자 '나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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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 8월 9일] 영화계의 선구자 '나운규'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1.08.0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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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나운규

[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나운규(羅雲奎, 1902년 5월 4일 ~ 1937년 8월 9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영화인이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출생했다. 회령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신흥학교 고등과로 진학, 1918년에는 만주 간도에 있는 명동중학에 들어갔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학교가 폐교됨으로써 1여년 동안 북간도와 만주지방을 유랑했다.

이때 독립군단체와 관련을 맺으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청회선터널 폭파미수사건'의 피의자로 체포되어 청진교도소에서 1년 6개월의 감옥생활을 마친 뒤 1923년에 감옥을나왔다.

1920년에는 독립군 지도자 중 한 명인 홍범도 장군 산하의 부대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4년 일본사람의 관리 하의 '조선 키네마사'에 연구생으로 입사해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에 가마꾼으로 출연했다.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나운규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강렬한 시선이다. 딱 봐도 포스가 느껴진다. 실제로 같은 영화사 소속의 선배 배우가 이 눈빛을 보고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나운규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강렬한 시선이다. 딱 봐도 포스가 느껴진다. 실제로 같은 영화사 소속의 선배 배우가 이 눈빛을 보고 "너는 악역이나 범죄자 같은 배역이 어울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농중조'라는 작품에 출연해 배우로서 명성을 떨쳤다. 

1926년에는 무성 영화인 '아리랑'을 제작함으로써 대한민국 영화계의 선구자로 등장하게 됐다. 이 작품은 나운규 자신이 각본을 쓰고 감독과 주연까지 겸하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종로 단성사에서 상영한 이 작품은 대한민국 영화계에 큰 획을 그었다. 이후 영화계의 중심이 돼 많은 작품을 내고 대한민국 영화의 새로운 개혁을 시도·공헌했다.

작품으로 '금붕어', '들쥐', '벙어리 삼룡', '오몽녀' 등이 있다. 

1937년 8월 9일, 안타깝게도 한창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향년 36세.

그의 차남 나봉한도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활동했던 바가 있다.

그가 고인이 된 후 1993년 8월 대한민국 정부는 윤봉춘과 함께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91년 MBC에서 그의 삶을 다룬 특집극 '춘사 나운규'가 방영됐는데 이덕화가 주인공 춘사 나운규 역을 맡았었다.

출처 : 위키백과,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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