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 3월 8일] 토크쇼의 대부 '자니 윤' 사망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 - 3월 8일] 토크쇼의 대부 '자니 윤' 사망
  • 장석호 기자
  • 승인 2021.03.08 09: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인천신문 장석호기자] 작년 3월 8일, 동양인 최초로 미국의 '투나잇 쇼'에 출연했고, 토크쇼라는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 포멧의 원조였던 한국 코미디언 자니 윤이 사망했다. 향년 84세.

▲데뷔 및 활동

1959년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데뷔한 그는 1962년 해군 유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파트 타임 가수로 활동하다 제대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코미디 클럽 무명 생활 끝에, 조니 카슨 쇼에 조니 카슨의 제의로 동양인 최초 '투나잇 쇼'에 총 34회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NBC 방송국에서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1973년 뉴욕 최고 연예인상을 수상했고, 1982년에는 영화 'They Call Me Bruce'에도 출연했다. 이후에는 뉴욕에서 라스베이거스로 활동지를 옮겨 활동했다.

명성을 쌓고 1989년 귀국한 그는 KBS 2TV에서 한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 '자니 윤 쇼'를 1990년까지 진행했다.

약간 떨어져 앉은 보조진행자 조영남이 가끔 이야기를 거드는 가운데 초대 손님과 대화를 주고 받으며 초대 손님의 근황, 최근 사회 이슈 등을 잠자리 들 시간대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차분히 담론하는 방식이었으나, 방송 검열 때문에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방송을 하기가 힘들다며 갑자기 국내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들어가 버린다.

1991년 SBS가 TV 방송을 개국한 뒤 주말 밤 '자니 윤 이야기쇼'를 통해 브라운관으로 돌아와 메인 MC로 활동했다. 다만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한국에서 그의 토크쇼는 생각만큼 오래 가지 못했다.

SBS에서 하차했을 당시 "다시는 토크쇼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고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의 활동은 토크쇼라는 프로그램 포맷이 한국에 뿌리내리게 한 기반이 됐다.

'자니윤쇼' 이후로 '주병진 쇼', '서세원 쇼', '이홍렬 쇼' 처럼 코미디언 개인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들이 연이어 방송됐다.

2002년 7월 14일에 경인방송에서 첫 방송한 'What's up' 의 진행을 맡았다.

1999년에 18세 연하의 재미교포 줄리아 리와 결혼하였고, 2009년에 이혼했다. 그럼에도 줄리아는 치매에 걸린 자니를 간호해 줬다.

2014년 8월 한국관광공사의 상임감사로 선임됐으나, 임기 만료를 앞두고 2016년 4월 13일 뇌출혈이 발병해 같은 해 6월에 물러났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물러난 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치매를 앓게 되어 오랫동안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근교 요양원에서 생활해 왔고, 2020년 3월 4일에 저혈압으로 입원했으나 끝내 3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은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메디컬 센터에 기증하기로 했다.

그가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보조 MC를 맡은 적이 있는 가수 조영남은 부고를 들은 후 "그의 풍자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회고했다.

▲에피소드

한국 이름은 윤종승이고, 종승이 외국인에게 발음이 어려워 John으로 영어이름을 지었는데 John의 애칭이 Johnny라고 밝혔다.

1970년대 후반, 인기를 끌었던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 출연할 당시 1회 출연료가 2,800만 원 정도였다고 한다.

*출처 : 위키백과, 나무위키, 인터넷커뮤니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