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3월 28일
상태바
[역사속의 오늘] 3월 28일
  • 여운균 기자
  • 승인 2019.03.28 07: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인천신문 여운균 기자] 3월 28일은 그레고리력으로 87번째 날이다.

[사 건]

1939년 - 프란시스코 프랑코 마드리드 점령해 스페인 내전 종결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공화파 수병 모습 (1937년)

스페인 내전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싸움이다. 1936년 7월 17일 모로코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고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 프랑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1969년 -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 추기경 임명

1993년 -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발생 (사망자 78명)

2005년 - 수마트라 섬 앞바다 8.7의 강진 발생

2008년 – 북한 서해로 다량의 미사일 발사

 

[문 화]

2012년 - 동북아역사재단 19세기 말 제작된 일본 지도 공개

2014년 – 소유즈호(TMA-12M) 국제 우주정거장과 자동 도킹 성공

 

[인 물]

1894년 - 조선 후기의 정치가 김옥균 사망

김옥균

김옥균(1851년 2월 23일~1894년 3월 28일)은 조선 말기의 정치가, 사상가, 급진개화파이다. 1872년 문과 장원급제 후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고 충의계를 조직해 개화 사상 확산에 힘썼으며 동남제도개척사 겸 관포경사에 임명돼 울릉도와 독도를 개척했다. 임오군란 후 일본식 급진 개혁을 주장했으나 양무 운동식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외척 민씨 세력에 번번히 발목을 잡히다 못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청나라 개입에 막혀 3일 만에 실패했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청일전쟁의 발발 직전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가 홍종우에게 암살됐다. 조선으로 송환된 시신은 부관참시 후 8도에 효수됐다. 청일 전쟁 때까지 중ㆍ일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존재는 늘 뜨거운 감자였으며 동양 3국 어디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후일 개화파가 집권한 뒤 복권됐고 일제 강점기 순종에 의해 충달공의 시호가 추서됐다.

1945년 - 필리핀 현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출생

1969년 – 미국 34대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사망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1890년 10월 14일~1969년 3월 28일)는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다. 미국 육군 원수를 지낸 뒤  1953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34번째 대통령으로 재직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 그는 유럽에서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으로 일했으며 1944-1945년에는 서부 전선에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지역 공격에 대한 책임을 맡아 공격을 계획하고 감독했다. 1951년에 그는 첫 번째 나토 사령관이 되었다. 전임 민주당 트루먼 대통령 당시 발생한 한국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휴전까지만 이끌어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