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파독 노동자에는 '조선기술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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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파독 노동자에는 '조선기술자'도 있었다
  • 엄홍빈 기자
  • 승인 2016.01.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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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민사박물관-재독조선기술자협회로부터 당시 한국인이 사용한 공구 등 유물 297점 기증받아

그동안 1970년대 파독노동자는 간호사와 광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조선기술자’도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 화제다.

이런 사실은 인천시립박물관의 분관인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최근 ‘재독조선기술자협회’로부터 1970년대 독일의 조선소에서 근무할 당시 한국인들이 사용했던 공구, 작업복과 안전모 등 총 297점의 유물을 기증받으면서 밝혀졌다.

한국인 조선기술자는 1971년과 1972년 세 차례에 걸쳐 약 300여 명이 독일 함부르크시에 있는 호발트(HDW;Howaldtswerke Deutsche Werft) 조선소와 3년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독일에 진출했다.

함부르크 호발트조선소에 파견간 한국인 조선 기술자들.<사진제공=한국이민사박물관>

이들은 외화 획득과 조선기술 개발을 위해 노동청과 해외개발공사에서 기술자들을 모집한 후 호발트 조선소의 인사부장과 관계자들의 입회 하에 기능시험을 치루고 어려운 경쟁을 통해 선발돼 파견된 기술자들이었다.

재독 한국인 조선기술자들은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함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줬고, 기술면에서도 인정받아 선체 조립 공장을 맡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특히 잠수함, 해상크레인, 시추선(Bohrinsel) 건조와 특수용접공 등으로 근무하면서 호발트 조선소 외에 유럽 인근 국가에도 파견 근무를 했다는 사실은 처음 소개되는 파독사(派獨史)의 한 장면이다.

호발트 조선소에서 한인 기술자들을 모집한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의배상으로 영국에 돌려줄 5만 톤 급 컨테이너선 5척을 건조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영국 선주 측 검사관들과 관계자들은 호발트 조선소에 상주하면서 한국인 기술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성실함과 능력을 갖춘 기술자로 인정했다.

1972년 현대중공업이 조선소도 없는 상황에서 영국을 통해 그리스 해운 회사의 26만 톤 급 유조선 2척을 주문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파독 조선 기술자들이 호발트 조선소와 영국 선박회사 검사관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소식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당당히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 파독 조선 기술자들의 숨은 헌신과 노력이 한 부분을 차지했기에 가능했다.

당시 파독 조선기술자들은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일했고, 휴가 시에도 일손이 부족한 농촌(과수원, 농장)이나 소기업 공장에서 노동을 해 힘들게 번 돈을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겨놓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 1970년대 국내 경제를 도왔던 것이 파독 간호사와 광부였다고 알고 있었으나, 여기에 파독 조선 노동자들의 헌신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 재독조선기술자협회의 주장이다.

이들은 대부분 3년의 계약 기간이 만료된 후 귀국을 했지만, 간호사, 광부와는 달리 국내에서도 같은 직종에 종사하면서 선진 기술을 확산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대부분 한진중공업과 대우조선에 입사해 과장, 직장, 반장, 조장 급으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조선 산업의 발전에 크게 헌신했다. 계약이 연장돼 현지에서 재취업한 40여 명에게는 회사의 특별한 배려로 한국 왕복 항공권과 휴가비를 지급하고 6주간 휴가를 보내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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