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12월 9일] 사회활동에 힘써온 독립운동가 ‘엄기선 여사’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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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12월 9일] 사회활동에 힘써온 독립운동가 ‘엄기선 여사’ 타계..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0.12.0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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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엄기선(1929년 1월 21일 ~ 2002년 12월 9일)은 일제강점기의 독립 운동가이며, 사회운동가이다.

▲ 출생

그녀는 경기도 여주 출신으로 상해임시정부 선전부장 부부인 독립운동가 엄항섭 선생(6·25때 납북)과 연미당 여사(81년 작고) 사이의 2남 4녀 중 장녀로 1929년 1월 21일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옆 건물에서 태어났다.

▲ 활동

엄기선 나이 10세였던 1938년 12월부터 한국광복군의 전신인 한국광복전선청년전시 공작대에서 오희옥 등과 함께 합류해 박영준, 이재현, 노복선과 일본군 내의 한국인 병사들을 상대로 공연과 연극을 통해 한국인 병사들의 광복군 합류를 선전하는 초모공작을 펼쳤다.

그녀는 연극과 무용을 통해 대원들의 사기를 앙양시키면서 중국 국민들에게 한국인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알리고자 노력했다.

1943년부터 일본군 내 한국인 병사들과 국내 동포, 연합국을 상대로 중국에서의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널리 알리고자 당시 충칭임시정부 선전부장이던 아버지 엄항섭을 도와 선전활동을 계속하며 국내 동포들에게 염전사상을 고취시켰다. 또한 투치아오(土橋)에 위치한 중화민국군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한국인 사병들을 위문하기도 했다.

부친 엄 선생은 김구선생을 도와 분단된 광복에 반대, 반탁운동을 펼치다 6·25때 북한에 피랍됐다.

이에 그녀 일가는 부친이 백범 김구선생 편에 선 탓에 정권의 미움을 사 월북인사로 규정되어 한때 빨갱이 집안으로 몰려 갖은 고초를 겪었다.

엄 여사는 광복 후 서울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여주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중 전쟁미망인들과 결손가정의 열악한 생활에 충격을 받아 1964년 대전에 결손가정을 돕는 ‘루시모 자원’을 세워 결손가정 가족들을 돌보는 사회복지활동을 폈다.

사회복지활동을 이어가던 중 2002년 12월 9일 대전을지병원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 

▲상훈

엄기선 여사는 1993년에 건국포장을 받았으며, 아버지는 지난 1989년에 복권이 되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어머니는 1990년에 애국장을 서훈 받았다.

지난 1995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엄 여사는 "요즘 젊은이들은 반쪽 조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고통과 한을 느끼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면서 "비록 광복절 날만이라도 과거 광복과 통일을 위해 숨져간 선열들의 뜻을 한번쯤 생각해 보며 통일에의 의지를 가다듬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처: 위키 백과 / 온라인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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