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12월 2일] 대종교 창시자 ‘나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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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오늘- 12월 2일] 대종교 창시자 ‘나철 선생’
  • 여운민 기자
  • 승인 2020.12.0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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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인천신문 여운민 기자] 오늘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대종교 창시자, 대한제국 독립운동가 나철 선생이 태어난 날이다. 그의 본명은 나두영이며, 개명은 나인영이고 자는 문향, 아호는 홍암이다. 본관은 나주이다.

1916년 별세 하기 전 '나철 선생'
1916년 별세 하기 전 '나철 선생'

나철 선생은 전라남도 보성 출신으로 일찍이 한학을 공부했다.

문과에 급제해 관직생활로 부정자를 지냈으며 1891년(고종 28))에는 가주서, 1895년에 징세서장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후 귀향했다.

▲대종교 통한 구국운동

귀향한 후 1904년 강진의 오기호, 부안의 이기, 최전 등 호남 출신의 지식인들과 함께 비밀 결사인 ‘유신회’를 조직했다.

을사조약 직전인 1905년 6월 오기호, 이기, 홍필주 등과 일본에 건너가 동양 평화를 위하여 조선, 청, 일 3국은 상호 친선 동맹을 체결하고 조선에 대해서는 선린의 교의로써 협조할 것을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제의했다.

그러나, 별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항거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는 등 일찍부터 민족주의적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에는 이철, 강원상 등을 포섭해 ‘자신회’를 결성, 을사오적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07년 자수해 무안 지도에서 10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1년 후 고종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 후 나철은 구국운동의 일환으로 민족 종교 운동에 주력해 1909년 1월 15일 한성에서 대종교를 창시했다.

오기호등 동지 10명과 함께 서울 북부 재동 취운정 아래에서 60여명의 동지들과 ‘단군대황조신위’를 모셔 놓고 ‘단군교 포명서’를 공포했다.

이날을 중광절로 삼았으며, 이것이 단군교(대종교)의 시작이다.

중광이란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중흥한다는 의미였다. 망국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위기를 느낀 사람들이 단군교에 속속 입교(당시 2만 여명 가입)했지만 서울 북부지사교 정훈모가 친일로 돌아서고 일제의 탄압이 가해지자 나철은 1910년 8월 교명을 대종교로 바꾸었다.

이후 북간도에 지사를 설치했다. 한일 병합 조약 이후로는 일제의 박해를 피해 교단을 만주 쪽으로 이동했으며, 서일을 비롯한 대종교인들의 독립운동이 시작됐다.

1914년 본사를 옮겨 포교 영역을 만주 일대까지 넓혔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1915년 10월 ‘종교 통제안’을 공포하며 탄압을 노골적으로 진행했다.

나철선생의 예언시
나철선생의 예언시

교육 통한 독립운동

나철은 비밀 결사 조직인 ‘자신회’를 조직하고 을사오적으로 알려진 이완용, 권중현,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등 다섯 인물의 암살을 시도했다.

또한 그들을 죽이자는 참간장을 돌리기도 했다. 이후 일본을 방문해 일본 궁성 앞에서 단식투쟁을 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발족하면서 임시의정원 의원 35명 가운데 28명이 대종교 교도였다. 독립전쟁사에 기록된 봉오동, 청산리 대첩의 실질적인 지휘부는 대종교였다고도 한다.

이상설, 김좌진, 홍범도, 박은식, 김규식, 신채호, 이상용, 김동삼, 이범석 등 애국지사들이 그들이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정인보를 비롯해 김두봉, 이극로 등도 대종교인이었다. 김두봉은 1916년 구월산에서 나철이 순교할 때 시봉하기도 했다.

환국 직후에도 대종교는 번성해 1950년대 후반 교도 수가 60만 명을 넘어섰고, 삼일신고, 천부경, 참전계경 등 경전과 규원사화, 환단고기 등 역사서를 보급시켰다.

대종교는 민족 종교의 적통으로 인정받아 초대 정부의 제1 교단으로 등록되어 당시 대종교의 지식인들이 정부의 고위관리로 입각해 활동했다.

안호상 초대 문교부 장관 등이 중심이 되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교육이념에 홍익인간이 채택되고 단군 연호, 개천절, 한글 전용 등이 시행됐다. 민간에서는 대종교 중심으로 민족 행사들이 개최되어 1946년 광복 1주년 당시엔 대종교 총본사에서 채화된 성화가 남산 꼭대기에 점화되었으며 그해 개천절 행사에선 성화가 총본사에서 채화되어 마니산 참성단까지 봉송·점화되었다.

홍익대, 단국대, 경희대 등이 대종교 교인에 의해 설립된 대학이듯이 대종교 역사 자체가 교육과 독립운동이었다.

▲ 사망

나철은 1916년 8월 15일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한배검(단군)에게 제천의식을 올린 뒤 순명삼조( 한배님께 제천하고, 대종교를 위하고, 한배님을 위하고, 인류를 위해 목숨을 끊는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사후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오늘날 대종교에서는 음력 1월 15일을 중광절(나철이 대종교를 창시한 날), 음력 8월 15일을 가경절(나철이 순교한 날)로 정하고 이를 기념하고 있다.

대종교 천신교기(天神敎旗)
대종교 천신교기(天神敎旗)

▲대종교

대종교는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고대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세계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는 종교이다. 중광 교조는 나철로 초기에는 '단군교'라고도 잘못 불리기도 했다. 근본 교리는 성(性)·명(命)·정(精)의 삼진귀일(三眞歸一)과 지(止)·조(調)·금(禁)의 3법이다. 

대종교는 종교로 출발했지만, 창시 시기가 바로 일제 강점기였던 탓에 종교로서보다는 항일독립운동에 더 많은 공헌을 했다. 2010년 현재 전국에 약 3,766명의 신도가 있으며 시교당(대종교의 교회)과 수도원 20여 곳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다 현재 대종교의 4대 경절로는 중광절, 어천절, 가경절, 개천절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위키 백과 /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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