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장애인 권리 보장되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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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장애인 권리 보장되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진짜’다
  • 이수현 前 한국방송통신대 사회복지학과 실습지도교수
  • 승인 2019.08.1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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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25일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 “인권을 존중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할 때 우리 사회는 분명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SNS를 통해 “정부는 7월부터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방통대 이수현 실습지도교수
이수현 前 한국방송통신대 사회복지학과 실습지도교수

1988년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된 ‘장애등급제’는 31년간 장애인복지 지원과 관련하여 수급유무와 수급 양을 결정짓는 기준으로 활용되어 왔다.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사회보장이 사실상 전무했던 당시에는 큰 전환이자 계기였으며, 2019년 7월 1일부터 31년만의 또 다른 역사적 전환,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었다. 국가에 등록된 장애인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나뉘고, 기존 1~6급 장애등급제는 없어진다. 장애등급은 장애인 서비스 지급기준으로 활용됐지만 장애인의 개별적 욕구를 파악할 수 없는 제도라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었다.

그래서 이번 장애등급제 폐지의 주된 이유가 필요한 곳에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를 위해 6단계로 구분되던 등급을 없애고 장애 정도에 따라 중증과 경증으로 나누고 간소화했고 그동안 등급제의 틀 안에 갇혀 개개인의 상황에 따른 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던 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또 등급을 매기는 ‘인정조사’ 대신 조사원이 장애인이 거주하는 곳을 직접 방문하는 ‘종합조사’를 실시해 개개인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장애인을 지원하는 주요 서비스는 장애인의 욕구·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필요한 대상자에게 필요한 만큼 지원된다.

종합조사는 옷 갈아입기·목욕하기 등 ‘일상생활동작’, 문제·공격행동 등 ‘인지·행동특성’, ‘사회활동’, ‘주거특성’ 등 6개 분류로 구성했다. 장애인이 해당 항목에 어느 정도의 능력을 보이느냐에 따라 각각 점수를 부여하고, 합산 점수에 비례해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양을 배분한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 측은 바뀐 제도에서도 ‘수요자’는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맞춤형 복지를 하려면 수요자가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선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조사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수요자 중심의 복지라면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이 있어야 할 텐데 서비스지원 종합조사에는 전혀 없다. 조사표에는 여전히 장애인들이 무엇을 못하는지에만 확인하는데 그치고 있다.

아직도 기능 제한에 대한 점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다리가 절단된 사람과 다리가 잘리지는 않았지만 걷지 못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의 차이가 크다. 또한 걸을 수는 있지만 걸을 때마다 통증이 너무 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사람들도 아예 못 걷는 사람들과 비슷한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항은 없다.

한편으로 7월 1일부터 단계적인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른 예산반영의 문제이다. 예산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이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위하여 긴급하게 수혈되어야 할 예산은 활동지원 예산이다.

정부는 종합조사 도입을 통해 우선 최중증 장애인을 더 두텁게 보호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최중증 장애인에게는 월 최대 441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제 월480시간으로 확대하고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때 본인이 내는 부담금도 최고 32만원에서 절반으로 줄인다. 복지부는 전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현재 월평균 120시간에서 127시간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른 활동지원서비스 대상 인원의 확대와 그로인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의 증가 및 본인 부담율 감소에 따른 추가예산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활동지원 예산은 보건복지부 부처의 재량예산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질 의무예산이다.

2019년 장애인활동지원 본 예산은 1조34억원이다. 그런데 기획재정부에게 받은 추경예산은 114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보건복지상임위에서는 최소한의 예산으로 987억원을 증액하여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제출했지만 예산결산위원회에서는 논의도 되지 못한 상황이다. 장애인단체에서는 1,416억원의 예산이 추경으로 확보되어야 장애등급제가 진짜 폐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를 2019년 7월1일부터 시행한다고 공언하고도 2019년 예산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던 예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들은 예산 반영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오히려 장애인끼리 혜택을 나눠 사용하라는 것이고, 기존 6등급을 2등급으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한정된 예산안에 진행되는 종합조사는 결국 평균 서비스 지원량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가 장애유형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활동지원 수급자의 서비스가 감소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신규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점 등 서비스 총량이 확대되지 않은 장애등급제 폐지는 아직도 많은 우려 속에 있다.

8월의 무더위에도 장애인들은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하여 뙤약볕 아래에서 지금도 농성을 하고 있다. ‘장애등급제’가 진정으로 장애인의 삶을 바꿔내기 위해서는 OECD 평균의 장애인복지예산 확대와 더불어 소득·사회서비스·노동·이동·주거 영역에서의 제도 개편과 예산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진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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