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동 옛 시장관사,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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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 옛 시장관사,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 문종권 기자
  • 승인 2023.05.2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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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긴담모퉁이집 오는 24일 개방...시민서재·시민사랑방·갤러리 등 활용...

[미디어인천신문 문종권 기자] 신흥동 옛 시장관사가 복합문화공간 긴담모퉁이집으로 재탄생, 오는 24일 시민들에게 개방된다.

인천시에 따르면 긴담모퉁이집은 제물포구락부(2020년 6월)와 시민애(愛)집(2021년 7월)에 이어 세 번째로 시민에게 개방되는 인천시 문화재 활용정책 3호 공간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51.46㎡ 규모의 목조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은 서양건축 양식과 구조에 전통 일식주택 요소를 더한 문화주택(文化住宅)의 전형적인 건축공간 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이상 사진=인천시]
[이상 사진=인천시]

문화주택은 일제강점기,1920년대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서양식 주택을 지칭하며 유행한 용어다. 1920년대 일본에서 새로운 문물에 접두어로 붙던 문화(文化)라는 단어가 주택(住宅)과 결합하면서 서양식 주택 또는 새로운 주택을 지칭하는 단어로 생겨났고, 그런 의미의 문화주택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유입돼 유행했다.

전형적인 문화주택의 건축물이라는 점을 넘어, 긴담모퉁이집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크다.

긴담모퉁이길은 신흥동 일대에 살던 일본인들이 축현역(현 동인천역)과 경인가도(배다리 쪽)를 편하게 오가기 위해 홍예문(1908년)보다 일 년 먼저 조성된 신작로다.

이 길은 신흥동 정미소로 출근하던 조선 아낙네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32년 당시 인천의 16개 정비소 여공은 모두 1,300여 명, 도정한 쌀에서 쌀겨와 잔돌을 골라내는 일을 하던 조선인 선미공(選米工)들은 일본인들로부터 견디기 힘든 민족적·성적 차별을 받았다.

1930년대 조계지에 터를 잡지 못한 일본인들이 이곳 신흥동에 눈을 돌렸으며, 듬성듬성 있던 조선인 가옥과 주변의 무덤들이 정리된 반듯한 골목길 양쪽에는 일본인들의 문화주택이 들어섰다.

긴담모퉁이집도 1938년 건축돼 1954년부터 1966년까지 인천시장 관사로 사용됐으며, 주변 여러 관사들이 들어서면서 한때는 이곳을 관사촌으로 부르기도 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신흥동 옛 시장관사는 시민의 서재, 시민의 사랑방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건축 당시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2층과 지하 벙커는 시민이 기증한 책들을 전문 큐레이션을 통해 비치해 테마가 있는 서재 공간으로 꾸미고, 건물 외벽은 인천 원로작가회와의 제휴 협력을 통해 분기별로 여섯 작품씩 총 24작품을 출품, 전시해 골목갤러리로 활용하게 된다.

문화공간이 부족한 신흥동의 상황을 고려해 사랑방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된다.

올 6월부터 매주 금·토·일요일 어르신과 초보자를 위한 힐링요가, 말없이 마시는 커피, 해설이 있는 영화감상 등이 시민서재와 모랫말 쉼터에서 진행된다.

인천시민애(愛)집과 제물포구락부, 자유공원-신포시장-답동성당-긴모퉁이길-신흥동 옛 시장관사를 걷는 인문로드 프로그램 긴담모퉁이집 가는 길도 선보일 예정이다.

개항장 너머 모랫말이라 불리던 한적한 바닷가 어촌 마을이 지금의 신흥동이 되기까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골몰길을 함께 걸으며 들을 수 있다.

프로그램 참여는 제물포구락부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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