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조 한류 '코리아나'를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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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원조 한류 '코리아나'를 기억하시나요?
  • 글/사진=고상규 기자
  • 승인 2021.07.0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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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나 홍(홍화자) "지금도 명성잇는 단독무대 계속"
코리아나 홍이 2019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4.19 혁명 기념식에서 무대 열창을 하고 있다. / 고상규 기자
2019년 서울 광화문 광장서 가진 4.19혁명 기념식 공연. / 고상규 기자

한류의 원조 코리아나 멤버 故 이용규 씨가 얼마전 폐암으로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코리아나 원 멤버 모두가 무대에 모여 단 한번만이라도 공연을 갖고 싶었던 코리아나의 맏형 홍화자 씨(코라아나 홍)의 마지막 희망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지만, 명성을 잇는 그의 단독 무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홍씨는 최근 가진 인터뷰에서 "얼마전 세상을 떠난 이용규씨는 드럼뿐만 아닌 모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진정한 음악인이었다. 지금은 먼저 간 딸 옆에 묻혔지만 그의 음악은 지금도 모든이의 마음속에 있다. 그의 음악, 우리의 음악을 홀로 공연을 통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홍씨는 최근 몆년간 솔로로 전국을 돌며 음지에 있는 사람들,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재능기부 형식의 공연을 통해 자신이 입버릇 처럼 얘기했던 "음지에 기쁨을 주고 싶다"는 뜻에 맞는 공연들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몆년 간 그는 청송교도소, 전주교도소 등을 방문해 과거 명성과는 걸맞지 않은 작은 음지의 무대를 통해 팬들과 만남을 갖고 있다.

코리아나는 과거 미 8군 무대에서 탭 댄스를 추며 활동했던 '전승남과 6남매'로 이승규, 이용규 형제가 주축이 됐다. 이후 매니저인 김영일 단장의 부인 홍씨가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리틀 큐피드, 코리언 플라워즈, 파이브 핑거즈, 아리랑 싱어즈에 이어 지금의 코리아나가 탄생했다.

경기 구리시 한 카페에서 만난 코리아나 홍.
경기 구리시 한 카페에서 만난 코리아나 홍.

특히 88년 당시 우리나라의 첫 하계 올림픽이 열렸던 잠실 메인스타디움은 그야말로 코리아나의 열풍이었다. 당시 대회는 전세계 159개국이 참가하며 역대 올림픽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고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를 가창한 코리아나의 음악은 전 세계의 러브콜을 받기 충분했다. 

88년 이전에도 그랬지만 서울올림픽 이후 전 세계에서 보낸 러브콜로 국내보다는 주로 홰외에서 거주하던 이들은 1992년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국으로 영구 귀국했고, 2005년 이후 원 맴버들의 개인사 등으로 활동이 중단되며 지금은 코리아나 홍, 홍씨의 외로운 단독무대로 과거 명성을 지키고 있다. 

실제로 홍씨는 2019년 4.19 혁명 기념식이 한창이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진 공연에서 서울올림픽을 장식했던 '손에 손잡고'와 '빅토리(The Victory)'를 열창했다. 이날 광장에 운집한 많은 사람들은 자연히 두 팔을 하늘로 뻗었고, 이를 본 기념식장 주변 차량들또한 멈춰서며 과거 코리아나의 화려한 무대를 연상시켰다. 

올해로 나이 70 초반을 훌쩍 넘긴 그는 "나이는 숫자 일 뿐, 내 외모는 주름이 없는 아직도 58년생이고 과거의 열창을 잃어버리지 않게 지금도 목소리 튜닝을 하고 있다. 여기 저기서도 아직도 나를 찾는다. 요즈음 트로트가 대세인데..미스터 트롯에 나오는 젊은 가수중 '손에 손잡고'를 나와 같이 부르면 어울릴 가수가 있다"며 호탕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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