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김천 연화지(鳶嘩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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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김천 연화지(鳶嘩池).
  • 최애영 사진기자
  • 승인 2021.03.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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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지(鳶嘩池) 풍경은 주경 보다는 야경이 훨씬 예쁘다.남의 아파트에 올라가 찍어야 하는데 문을 잠궈 두어 한참 애를 먹고 찍은 사진이다.
연화지(鳶嘩池) 풍경은 주경 보다는 야경이 훨씬 예쁘다.남의 아파트에 올라가 찍어야 하는데 문을 잠궈 두어 한참 애를 먹고 찍은 사진이다.
연화지(鳶嘩池)를 보며 이안눌은 이렇게 노래 한다.
연화지(鳶嘩池)를 보며 이안눌은 이렇게 노래 한다."夜宿金陵一草家(야숙금능일초가) 平池如鏡侵枯荷(평지여경침고하) 五更寒月三便雨(오경한월삼편우) 無限風光獨自嗾(무한풍광독자수)밤에 금릉의 초가에서 자는데거울 같은 못물이 마른 연을 적시누나."라며한밤중에 비오더니 새벽에 찬 달이라한없는 풍광을 나홀로 읊네.나도 시인이 되어 탁배기 한사발 걸치며 연화지(鳶嘩池)를 노래하고 싶다.
늘어진 벚꽃을 보면서 새색시 수줍은 볼처럼 발그레해진 나의 미소를 본다.
늘어진 벚꽃을 보면서 새색시 수줍은 볼처럼 발그레해진 나의 미소를 본다.
봉황대(鳳凰臺)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820-1봉황대는 연화지, 김산향교와 함께 교동이 조선시대 말까지 김산군의 읍치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유적으로 사방3간의 2층 다락으로 1700년 창건되어 처음에는 읍취헌(邑翠軒)이라 불렀다.원래 김산관아의 북쪽 구화산 아래에 있었는데 1838년 군수 이능연(李能淵)이 지금의 자리인 연화지 중앙으로 옮겼다.연화지는 1707년부터 1711년까지 김산군수를 지낸 윤택(尹澤)이 솔개가 봉황으로 변해 날아오르는 꿈을 꾼 후 연못을 솔개(鳶)자에 바뀔 화(嘩)자를 써서 연화지(鳶嘩地)라 이름 지었고 날아간 봉화의 방향이 읍취헌 쪽인지라 다락 이름도 읍취헌에서 봉황대로 고쳤다고 한다.
봉황대(鳳凰臺)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소재지: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820-1봉황대는 연화지, 김산향교와 함께 교동이 조선시대 말까지 김산군의 읍치였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유적으로 사방3간의 2층 다락으로 1700년 창건되어 처음에는 읍취헌(邑翠軒)이라 불렀다.원래 김산관아의 북쪽 구화산 아래에 있었는데 1838년 군수 이능연(李能淵)이 지금의 자리인 연화지 중앙으로 옮겼다.연화지는 1707년부터 1711년까지 김산군수를 지낸 윤택(尹澤)이 솔개가 봉황으로 변해 날아오르는 꿈을 꾼 후 연못을 솔개(鳶)자에 바뀔 화(嘩)자를 써서 연화지(鳶嘩地)라 이름 지었고 날아간 봉화의 방향이 읍취헌 쪽인지라 다락 이름도 읍취헌에서 봉황대로 고쳤다고 한다.
연화지(鳶嘩池)에 왜가리 한마리가 손님 접대를 하러 나왔나 보다.인포커싱으로 담아 본 연화지(鳶嘩池)의 왜가리.
연화지(鳶嘩池)에 왜가리 한마리가 손님 접대를 하러 나왔나 보다.인포커싱으로 담아 본 연화지(鳶嘩池)의 왜가리.
연화지(鳶嘩池)의 왜가리.아웃포커싱으로 담아 봤다.
연화지(鳶嘩池)의 왜가리.아웃포커싱으로 담아 봤다.
5장으로 포커스스태킹한 벚꽃.
5장으로 포커스스태킹한 벚꽃.

매년 봄 이맘때면 수줍은 벚꽃이 나를 부르는 곳이 있다.

다름아닌 김천연화지(鳶嘩池)이다.

작년에 다녀 와서 안가려했는데 벚꽃 소식이 듣자마자 지난 27일 나도 모르게 달려 간 곳 연화지(鳶嘩池).

작년에 찍은 사진이 화각이 좁아 답답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넓은 화각 11mm 단렌즈로 담아 보았다.

연화지(鳶嘩池) 벚꽃은 주경 보다는 야경이 훨씬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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